여호와의 증인이 워치타워를 떠난 이야기
여호와의 증인이 워치타워를 떠난 이야기
여호와의 증인 이탈서 (퍼옴)
본인은 더 이상 '여호와의 증인'으로 더는 인정되거나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소위 증인 2세로서, '진리'는 '언제든, 어디서든 불변'이며,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옳아야 하고, 하나라도 어긋나면 열까지 다 무너진다'고 배웠습니다. 만 OO세에 침례 받기로 결심했는데, 이 '선택'은 당시의 제 사고로써 '여호와의 증인'의 가르침을 '진리'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약 OO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논리적인 순서로… 말로 가르침받은 것들이 확실'(누가 1:3, 4)한지 검토하는 데 관심이 많으며,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협회' 역시 '이미 배운 것들을 계속 확인하여 자신의 확실한 것으로 만들라'는 합리적인 권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 조언을 따라 개인연구를 하던 중 최근 발견한 것들은, 저로 하여금 '이 조직이 여호와의 인도를 받는 신권조직인가' 라는 질문에 확답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지난 약 5개월간, 저는 혼란스러웠던 문제들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과정에는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포함됩니다. 출판물에 근거한 자료들과 그에 대한 제 질문들을 정리해 보여드렸는데, 아쉽게도 명확한 답변을 주시는 분이 없었습니다. 한 장로 형제의 말씀처럼, 조직의 입장과 변론은 이미 출판물에 서술되어 있으므로, 제가 출판물을 조사하고도 이해할 수 없는 문제라면 -협회에 서신을 보내든, 동료들에게 물어보든- 더 이상 받을 수 있는 도움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사실, 제 질문들을 대하는 동료들의 반응이 저를 더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조직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절대적인 순종'으로 이어지는 '여호와의 증인'인데, '우리가 언제 교리들에 특별한 의미를 두었느냐'는 듯 너무도 쉽게 인식을 바꾸는 모습... 많이 놀랐습니다. 그 만큼 조직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이유가 바로, 협회의 가르침은 '적은 무리'가 여호와의 인도를 받아 전하는 '절대 진리'이기 때문 아닙니까? 교리의 모순에 대하여, '믿음을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는 식의 태도는 저를 무척 실망시켰습니다.
결국, 저는 협회의 가르침에 모순이 있다고 결론 지었습니다. 추측, 비약, 관련 없는 성구의 연계, 나아가 증인의 역사와 성서의 예언을 억지로 일치시키는 자의적 해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저 역시 조직의 논리에 길들여져, 모든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여왔습니다. 여러분도 그러하듯, 참 종교의 여부는 진리의 시비 여부입니다. 성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교파가 나뉘며, 교파에 따라 참 종교와 거짓 종교로 판단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교리가 과거에도 바뀌었으며, 현재도 바뀌고 있고, 미래에도 바뀔 수 있음을-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임을- 당연히 생각합니다. 진리는 '점점 빛처럼'(잠 4:18) 밝아지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오히려 저를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현재의 교리들도 충분히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진리의 빛이 아직도 밝아지는 중이라면-오류가 어느 정도 있는 것이 정상이라면- 세상의 수 많은 종교들의 참/거짓을 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류의 많고 적음으로 '참 종교'임을 확신하는 것,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이에 자진 탈퇴합니다.
저는 여호와를 부인하는 게 아닙니다. ''여호와의 증인' 조직이 여호와의 승인을 받았으며, 그분께 다가갈 수 있는 지상의 유일한 통로임'을 부인합니다. 여호와가 아니라 여호와의 증인 조직을 떠납니다.
물론, 제가 정답을 찾았다는 것도 아닙니다. 적어도 과거의 제 선택이 오답이었음을 가려냈다는 것입니다. 협회의 가르침이 '세상'에 대해 심어놓은 두려움 역시 남아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가 아니면, 어디로 갈 수 있겠는가'라는 식의 사고방식으로 이 조직에 머무를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제가 '여호와의 증인'을 참 종교로 믿으면서 크고 작은 대가를 치를 때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분명, 조직을 이탈하면서도 용기-어쩌면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그렇게 소중했던 이 조직이 '참 종교'라고 하기엔 너무나 많은 오류가 있음을 알았을 때... 참으로 슬펐으며, 심지어 조직에 대한 배신감마저 들었습니다.
지금까지의 OO년 일생을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살아왔습니다. 인맥관계 역시 이 조직 안에서 형성된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또한 그것을 축복으로 여겼습니다. 제가 조직을 이탈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압니다. 하지만 저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과의 관계를 끊고 싶지 않습니다...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이탈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조직에서 훈련받은 제 양심 때문입니다. 지금껏 OO년 가까이 해온 봉사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모순임을 알게 된 협회의 가르침들을 더 이상 전할 수 없습니다. '이방인'들보다 더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에게는 오죽하겠습니까. 의견을 나누고 싶어도 그러한 제 언행이 오해를 살까 두려우며, 그러므로 불편한 이 상황이 너무 괴롭습니다. 불명예스럽게 제명되고 싶지 않습니다. 이에 자진 탈퇴합니다.
그동안 저에게 많은 사랑과 관심을 베풀어준 동료들, 또한 저를 돕기 위해 애쓰신 장로회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부디 제 소중한 형제자매들의 희망이 되는 협회의 가르침들... 다시 한 번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이 이탈서는 '여호와의 증인' 한국 지부 사무실에도 제출합니다.
2011년 8월 28일
P.S. 장로회 앞에서 '이탈'을 최종적으로 확정한 날은
8월 28일(이탈서에 적힌)이 아닌, 9월 9일(협회의 답신을 받고)입니다.
P.S.2. 저에 대한 믿음을 호소하는 건 아니지만...
저를 조금 아신다면, '과연 왜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됐는지' 궁금할까요?
제 의문점들은 조직의 출판물에 근거한 것입니다.
저도 한국 생활 중에는 이런 구체적인 개인연구를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집회 준비로도 바빴는걸요.
물론, 계산해야 하는 문제도 있고, 배경 지식이 필요한 문제도 있습니다.
어렵지만, 그래도 낭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여호와께 헌신했던 마음으로 살필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과 사랑을 주고 받던 사람 입니다.
이렇게 밖에 달리 인사할 방법도, 변명할 기회도 없는 저를 이해해주세요.
신체적으로,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죄 짓지 않았음을 밝혀둡니다.
오로지 교리적 모순으로 이탈합니다.
제 주관적인 얘기를 길게 늘어놓는다면, 조직의 가르침에 대해 객관적으로 논할 수 있는 분위기가 깨진다는 걸 압니다. 길게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중국에서 봉사하면서, 사람들을 더 잘 가르치기 위해 했던 연구들이 제가 모르던 것들, 알아차리지 못한 것들, 지나치고 있던 것들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처음엔 정말 혼란스러웠습니다. 형제자매 모두들 이 점들을 알고도 이 조직에 머물러 있는 것인지 당황스러웠구요. 그래도 조직에 고착하면 언젠간 해답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수 많은 출판물을 참고하고 장로 형제들께 도움을 구하고 협회의 답변까지 받았으나,
해결은 커녕, 더욱 미궁속으로 빠지고 결국 이렇게 결론이 났습니다.
제가 겪은 혼란은 이 조직이 오답이라는 결과는 얻었으나 다른 답을 찾지 못한 까닭으로
여러분에게도 혼란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 함부로 말할 수도 없고, 제대로 말할 수도 없기에, 이렇게 떠나는 저를 다시 한번 이해해주세요.
저는 저희 어머니를 통해 이 조직을 '참 종교'라고 믿게 된 소위 '증인 2세'입니다.
물론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이 호칭을 굉장히 싫어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에 모태 신앙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개개인이 '진리'라고 깨닫고, 자신의 의지로 선택해야만 하는 길이기 때문이죠.
저 역시 제 인생을 좌우하는 '종교'라는 중요한 문제에서-사고의 틀이 되는 문제에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 엄청 노력했습니다. 꾸준히 개인연구 해왔고 또 그러한 개인연구를 통해 이 종교를 확신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동안 해 온 개인연구들의 많은 부분은 잔가지였을 뿐, '참 종교'라고 확신하는 데 필요한- '여호와의 증인'을 다른 종교들과 분리시켜주는 기본/중심 교리에 대한- 개인연구는 부족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엔 왜 이렇게 생각해보지 못했을까요...
간단히 말하면, 조직에 대한 무한하고도 절대적인 신뢰때문입니다. 믿고 싶었습니다. 이 세상엔 분명 '절대 진리'가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이미 제가 사랑하게 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조직을 떠나면, 이런 것들을 누릴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참 많이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고 그것들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면서 그동안 맞다고 생각해왔던 다른 것들도 재검토 할 필요를 느낍니다.
저는 잘난 사람도 아니고, 못난 사람도 아닙니다. 그저 제 인생을 위해-'여호와'께서 원하신다면-용기 있는 사람이고 싶을 뿐입니다. '과거의 선택-만 OO세의 사고로 선택하고, OO세 지금껏 해온 판단-을 유지하지 않기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착오였음'을 인정하고, 다음을 향해 나아가기로 했습니다.
'답을 내놓을 수 없는 문제에 대하여-여러분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는 문제를-그래도 언급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도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나, '오답을 손에서 놓지 않으면, 정답을 쥘 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확신하냐구요? 사탄의 세상이 두렵지 않냐구요? 자신을 믿냐구요?
제가 얼마나 어려운 결정을 한 건지... 짐작이 되나요?
겸손이 뭘까요? '지금은 이해가 안 되지만, 언젠간 되겠지.'라는 생각만이 겸손일까요?
그동안 만나온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이 진리다.'라고 말해온 '절대 진리'가 오류임을 인정하는 것은 과연 쉬운 일일까요? 이렇게 얘기하는 제가 교만인걸까요?
나이를 먹고 경험을 쌓고 사고도 달라지면서 분명 저에게도 변화는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바라는 세상, 제가 원하는 인생, 제가 꿈꾸는 저는 그대로 'OOO'입니다 :)
저를 아는 분들은 알죠. 제가 적극적인 사람이라는 걸. 이 종교가 정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열심히 할 수 있었습니다. 답이 아니라고 결론난 지금 역시 적극적으로! 다시 힘차게! 나아가려고 하는 거구요.
한 번 했던 선택을 번복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 선택이 이미 많은 것들을 좌우 했다면,
번복이라는 것은 정말 어렵고도 '아까운' 것이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조직을 통한' 여호와에 대한 헌신, 이 중대사를 번복한다는 것은 지나간 OO년이라는 세월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합니다.
저는 여호와에 대한 헌신을 져버린 것이 아니라, 조직에 대한 헌신을 취소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 경험으로 비추어 보아도, '조직을 떠나면, 여호와를 버리는 것'이 되는 관념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은 것 같네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기도 합니다.
복잡한 계산 문제도 있고, 방대한 자료수집 문제도 있습니다.
어느 장로형제께서는, 제 말씀을 듣고는, 제 '종교관부터 틀렸다고, 조직은 원래 완벽할 수 없는 것이라고, 진리는 하느님의 말씀-성서고, 조직의 가르침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종교, 진리'의 관념이 제 잣대와 안 맞으니까 그러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침례 전에 그렇게 안 배웠냐고 사회자가 안 가르쳐줬냐'고 되묻기까지 하셨는데, 여러분도 정말 '종교, 진리'에 대한 개념이 그러한 건지 궁금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제 문제에는 '종교, 진리'에 대한 개인 취향? 기준?의 문제도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번을 계기로 '조직의 가르침을 자신의 것으로 온전하게' 만들 수도 있고, 다시 한 번 검토할 필요성을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제 변명을 계기로 한 글들이, 어떤 방향이든간에 여러분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P.S. 제 핸드폰 전화번호부에 있는 분들께만 짧게 인사드렸습니다.
미처 인사 못 드린 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정신이 없어 일일히 답장 못 한 것, 통화 못 받은 것, 이해해주세요...^^
이 편지로 여호와의 증인으로부터의 탈퇴를 선언합니다.
희망을 전하며
원주서부회중 여러분에게,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은 제 인생에 매우 중요하고도 심각한 것입니다. 현재까지의 제 인생은 증인이 아닌 삶보다 증인으로서의 삶이 더 길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러하듯이 저 역시 증인으로 살아오면서 증인이 아닌 인생을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그래서일지 다른 삶을 선택해서 살아온 지난 6년간은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는 제 인생의 치열했던 전환점을 설명하는 것이기에 매우 길 수밖에 없지만, 여러분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서 최대한 간결하게 쓰고자 합니다.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저의 마음을 부디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교육을 받아 중립을 지키고 회중의 장로로 일하기까지 오랫동안 성서와 워치타워 출판물을 읽어 왔습니다. 제가 갖고 있던 믿음이 진리라고 생각했으며 지상에서 유일한 참 종교에 속했다고 확신했기에 젊음을 바쳤고 세속적 야망과 기회를 기꺼이 포기했습니다. 더불어 이 조직에서 만난 선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환경이 더 없이 좋았고 장래에 신세계의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모습을 그려 왔습니다.
하지만,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사물을 좀 더 종합적이고 분석적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급기야 제가 믿고 있던 믿음 중 많은 것들이 성경전체와 조화롭지 않고 오히려 심각한 모순이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차분하게 심층적인 연구를 시작하였고 선입견과 타인의 영향을 최대한 배제하면서도 스스로 국내외 학술자료와 협회출판물을 비교분석하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상상할 수 있듯이) 이 과정은 제 인생을 송두리 채 바꿔놓는 매우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제발 내가 믿고 있는 증인의 삶이 진리이기를, (발견되는) 반대논리들이 거짓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구에 임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제 삶이 과연 제 스스로 선택한 삶이었는가를 처절하게 되 돌아 보는 기회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참 하느님과 기름부음받은 지상의 남은 자 반열을 따르고 있다고 확신했던 저였지만 연속되는 재발견과 반전속에서 정신이 아득해 질 지경이었습니다.
약 2년간 연구와 번뇌를 거듭하면서 급기야 회중에서 장로로 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점차 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회중에서 가르친다는 것은 저의 양심에 배치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쉽사리 결론을 내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장로를 사임하고도 전도인으로 1년을 더 활동하면서 좀 더 많이 검증하고 토론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형제자매들은 반대논리나 교리적 모순에 대해 논의하려는 저를 사탄의 영을 받았다거나 배교적 사상자라고 평가절하하고 비난하였습니다. 또한 저를 교만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벧엘에 똑똑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너 만한 판단력이 없겠느냐는 말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지하게 성서적으로 저를 설득하는 능력을 보여준 사람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고도 애석한 일입니다. 그분들은 그저 [숲을 보고 가야한다]든지 [언젠가 조정될 것이다]라는 말로 구체적 토론을 회피하였습니다. 제기되어 있는 종교적 모순과 현실을 회피하려는 것은 비성서적이며 참 그리스도인다운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형제들은 통치체의 지침(출판물)과 하느님의 명령을 동일시할 정도로 복종하면서도 출판물의 모순과 오류를 지적당할 때는 인간들이 쓴 것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어떤 (증인들이 말하는 거짓종교세계제국인) 종교조직이 스스로의 모순을 변명하면서 인간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라든가 때가 되면 하느님이 조정해 주실 거라고 말한다면 증인들 자신은 이를 용인할 수 있을까요. 다른 종교에게 들이대는 엄격한 잣대를 정작 자신들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면, 이는 공정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연구가 거듭될수록, 내가 행하고 있던 그리스도인 행실과 공개적 선포의 본질이 하느님과의 개인적 관계를 견고히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바리새인들과 같이 인간이 정한 세부규칙을 따르는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이 생겨났습니다. 방대한 종교사를 공부하면서 완전하지 않은 인간종교조직이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대리한다고 주장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앗아갔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무활동 상태로 접어든 이후 약간의 위험(?) 을 무릅쓰고 제가 깨닫고 느낀 바에 대해 동료들에게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정어린 저의 진심과는 달리 이것은 고발로 이어졌고 회중내에 파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회중에서는 급기야 이탈처분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저의 생각을 충분히 모르는 가족과 벗들에게 상처를 줄 것을 우려하여 사법처리는 유보해 줄 것을 부탁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종교에 대한생각과 논리가 확립된 저로서는 사법처분은 두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영문을 모르는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제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이즈음 저의 사상적 고뇌를 외면한 채 저의 사생활까지 들먹이며 도덕적인 문제로 소문을 지어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의 이탈의 원인이 사상적 문제가 아니라 다른 데 있다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직을 떠났기 때문에 분명히 불행해 질 것이라고 저주의 말까지 하면서 차갑게 저를 내치는 분도 있었습니다. 참으로 이런 상황은 중세 마녀사냥과 북한의 인민총화를 연상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회중의 이탈발표를 계기로 영문도 모르고 마음아파하는 친족들과 지인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저의 입장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각자의 선택한 삶이 있다는 것은 존중하지만, 모순을 회피하고 진실을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은 더욱 불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아직도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는 형제자매들은 저를 피하기도 하고 어색하게 인사를 하기도 합니다. 그럴때면 함께 많은 추억을 공유했던 여러분에게 달려가 당장이라도 반가움을 나누고 싶습니다. 하지만, 확고한 자기주관이 없는 듯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어색하고도 두렵게 떨리는 여러분의 눈길을 보면 이런 감정을 포기해야 합니다. 진리를 가지고 있다면 도대체 두려워 할 것이 무엇이며 저를 향해 어떤 설득의 말이라도 해야 할 텐데, 여러분은 그런 용기가 없으십니다. 여러분은 저의 얘기 한마디 들어보지도 않은 채 그저 사탄주의자나 배교자로 내모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혹시 조직의 마련이 두려워 저를 멀리하시는 겁니까.
어떤 분들은 (그동안 출판물이 암시하였듯이) 저를 차갑게 대하면 제가 다시 조직으로 돌아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을 강압적으로 돌리려는 것은 일차원적인 것이며 성서전체의 특성과도 배치됩니다. 여러분의 (이방인)가족이 여러분을 호되게 반대하고 따돌린다고 여러분이 스스로 신념을 포기하는 일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언제나 그렇듯 사람의 마음을 돌리는 것은 집단적 왕따나 처벌이 아닌 진정성있는 대화와 설득입니다. 성서에는 일부 범죄자들에 대해 인사도 하지말라고 하는 성구가 있는 반면 용서하고 설득하라는 성구도 많지 않습니까. 인간조직에 반한다고 성령을 거스른다거나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다는 등의 지침은 조직논리를 앞세운 인간들의 주장입니다. 집단왕따와 절교처벌은 하느님의 권위를 무단으로 차용했던 카톨릭의 파문제도나 공산주의의 인민재판과 같은 것입니다. 정통성이 결여된 집단에서 사용하던 구시대적 인권탄압이지요. 성서전체의 그리스도 사상이 이런 제도를 지지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성서적으로 배교란 특정집단의 가르침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 요한 둘째 9,10절에 나오듯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반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무엇인가에 집중하면서 성서를 연구하였습니다. 통치체의 해설이 성서와 부합하는가를 살피는 일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한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성서를 능가하는 가르침은 없다는 사실에 동의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통치체의 해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상충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성서 마태 24장 36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임재시기를 하느님만 안다고 하였습니다.(이 성구가 가리키는 것은 큰 환난이 아니라 임재입니다. 전후문맥을 잘 살펴보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치체는 자신들이 이것을 1914년 이전에 예지하고 인지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가 1914년 가을이라고까지 구체적으로 지목하였습니다. 다니엘서와 예레미야서의 일부성구를 대입하여 연대계산식까지 발표하였습니다. 통치체는 오랜 기간동안 이 연대계산과 그리스도 임재를 연계하여 [다가오는 신세계]에 대한 열망을 증인들에게 심어줌으로써 개인의 소중한 것(재능, 학업, 진로, 직업, 사업)들을 기꺼이 희생토록 하였습니다. 증인들 중 많은 이들은 이런 장래희망이 없었다면 다른 삶을 살기 원하였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는 별도로 인간본연의 욕망에 관한 문제이며 현실적인 선택일 것입니다.
그러나 충격적이게도 저는 이 장래희망에 대한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1914년과 기원전 607년 관련 연대교리가 성서적으로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런 오류 때문에 출판물상에도 그간 연대에 대한 많은 번복이 있었던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1919년 이래 그리스도에 의해 선택되었다고 말하는 [충실하고 지혜로운 종]의 신분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성서의 연대와 관련된 성구를 종합하여 살펴보면, 기원전 607년 고대 예루살렘 멸망이라는 연대는 논리적으로 검증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그 어떤 백과사전을 보아도 기원전 607년 예루살렘 멸망이라는 고고학적 증거는 전무합니다. 그런데도 하느님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그 임재시기를 통치체는 계산했다고 했고 (예루살렘 멸망이 기원전 587년이라는)압도적인 고고학적 증거와 배치되는 성구기록은 무시하였습니다. 통치체는 이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출판물을 통해 (최근까지) 여러 기사를 썼지만, 출판물에서 누락시킨 (통치체에 불리한) 고고학 자료들과 성서적 논리가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계신지요. 예루살렘 황폐70년과 관련된 성구들 (예레미야,다니엘,역대기)이 단어해석과 번역에 따라 상이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은 문자적 70년 황폐기간이 성서적으로 온전히 입증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오히려 고고학과 일치하게 기원전 587년이라는 연대를 고대 예루살렘 멸망으로 받아 들일 때 조화로운 성서해석이 가능하지요. (물론 이 부분을 연구하는 것은 매우 심층적이고 고도의 집중력을 요합니다)
놀랍게도, (그동안의 우리의 이해와는 달리) 과거 성경연구생들은 1914년을 그리스도의 임재로 전혀 예지하거나 인지하지 못했으며 1940년대가 되서야 임재교리를 발표하였습니다(천년왕국 195p 55항). 이것은 제 사상을 바꿔놓은 결정적인 부분으로, 마태 25장에 나오는 슬기로운 처녀반열의 자격을 논할 때 출판물에서 스스로 강조한 부분이 오히려 오류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스도가 지상의 종을 검사하였다는 1919년 시점에는 (슬기로운 종 반열이라는) 성경연구생 그룹이 (지금의 증인들 관점에서 볼 때) 거짓 교리를 상당 부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들 역시 거짓종교제국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인도를 받은)영적 양식이 아닌 사람의 것을 배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슬기로운 처녀반열은 1919년 시점에도 왜 주의 임재를 인지하지 못했을까요. 그간 [돋는 햇볕]논리로 교리를 수정하며 여러 번 마지막 때의 기한을 늘려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통치체의 주장에 반하는 자료를 아예 보지도 못하게 하고 논의조차 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증인들은 출판물의 내용만을 가지고 통치체의 가르침을 믿으려 하는 것일까요. 영의 인도를 받았다는 영적양식은 왜 (진리가 아니라는 증거인듯) 수시로 변경되고 번복되는 것일까요.
이것은 여호와의 증인이 과연 하느님의 인도를 받는 진리의 조직인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이런 의문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증인조직의 역사를 다시 살펴보고 출판물간의 상호부조화, 교리의 원칙없는 변경, 예언에 관한 시대별 말 바꿈, 수혈교리의 변경 등으로 인해 희생된 소중한 목숨이나 개인의 삶들을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증인들에게는 성경에 버금가는 권위를 갖게 된 통치체의 지침 한 두가지가 수 백만명의 인생을 좌우하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 온 것입니다. 가변적인 통치체의 해설과 지침에 목숨을 걸고 충성하는 무리들이 있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섣부른 결론이나 합리화를 배제하고 객관적이고 학술적인 연구를 거듭하였지만, 모순은 더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선입견을 배제하고 공정성을 유지하는 것이 지성인의 자세라고 생각했으며 성서와 논리를 최종의 잣대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발견된 모순에 대한 체계적인 답을 해주는 형제들이나 출판물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유능한 순회감독자와 벧엘 장로들도 저의 질문을 일축하고 대답을 회피하였지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교리적 모순에 더해 워치타워 협회가 행해온 은밀하게 정치세력들과 결탁하고 타협한 일들을 발견하면서 좌절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미국의 워치타워협회는 10년간의 유엔홍보부가입, UNNGO활동, 월킬농장 폐기물 대규모 불법매립 , OSCE 회의참석 등을 통해 통치체가 표방하는 신념과는 다른 행동을 해 왔습니다. 게다가 이런 보고들이 반대자들의 중상이라고 일축하면서 사건을 부인하고 은폐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들은 객관적 자료에 의해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물론 사건의 폭로는 반대자들에 의해 행해졌지만, 사건 자체는 진실이었으며 역사로 남아 있습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조직을 따르고 있는 회중성원들만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 꼭 조사해 보십시오. 한쪽의 주장만을 읽고 무언가를 사실화하는 것처럼 무모한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양쪽의 주장을 공평하게 조사하고 계십니까. 인터넷을 통해 일반인들도 사실확인과 증거수집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정보통신시대에 인터넷을 멀리하라는 출판물의 경고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역사적으로 많은 신흥종교들이 그리스도 임재와 관련하여 연대계산을 하여 (다양한 형태의 말세론으로 포장된) 장래희망을 앞세웠고 청렴과 진실을 자랑해 왔습니다. 그들은 조직의 논리에 맞추어 특정성경성구들을 해석하는 반면 반대되는 성구들은 협의(狹義) 적용하거나 합리화하는 식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해 왔습니다. 결국 그들의 참 모습은 말 바꾸기와 모순이었으며 종교를 통한 비지니스가 주 목적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조직은 도덕적으로 조직운영의 측면에서도 장점이 많은 종교조직입니다. 하지만, (성서적으로 볼 때) 장점이 많고 적음에 따라 참 종교의 신분이 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방주와 같은 구원의 통로를 자임하고 하느님이 인도한다는 조직이라면 (스스로의 지침에 반하는 정치세력과의 타협과 같은) 내부적 모순이나 위선, 폐쇄성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게다가 이런 조직이 장래에 대해 그릇된 예언을 하고 교리번복을 하면서 반대자료에 대한 열람이나 토론자체를 금지한다면 조직의 정체성 자체를 의심을 해 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성서는 끊임없이 자신의 믿음에 대해 의심하고 조사할 것을 권합니다.(사도17:11)세상에는 그릇 인도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디모데 둘째 3: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사람들은 더욱더 악해져서, 그릇 인도하기도 하고 그릇 인도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끊임없이 조사하고 검증해야 합니다. 참 종교는 자기합리화나 자화자찬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인생을 건 종교였다면 사람은 누구나 그 종교에 대해 합리화하려는 유혹에 굴복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습니다. 저 역시 조직을 나오면서 제가 알게 된 사실들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조사하였습니다. 가능한 모든 자료를 비교분석하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베레아 사람들과 같은 상당한 주의력과 탐구력이 요구됩니다. 여러분은 그런 용기가 있으십니까 (사도 17:10, 11; 시 119:33-36)
최근 들어 파수대에서는 [배교자]나 [제명자]와의 교제금지를 가일층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간음과 같은 범죄자들과의 교제보다도 저와 같이 사상적 이탈자들에 대한 경고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이런 파수대의 강조기사는 그만큼 사상적으로 이탈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과 이들의 논리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방증(傍證)하고 있습니다. 사상적 이탈자들에 대한 강력한 교제금지 또한 접촉할 경우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것임을 자인하는 것이죠.
분명히 인터넷이나 도서로 흘러 다니는 반대자료 중 조잡하고 허무맹랑한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성서전체로 대조해 보건대, 진지한 연구자에게도 설득력 있는 자료들이 많으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맹목적 종교관념을 깨는데 일조하였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미국 등 서구에서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많은 사상적 반론자들이 워치타워협회에 대해 정보공개와 오류와 모순에 대한 대답을 요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협회의 묵묵부답과 무시로 일관하는 역사가 반복되고 있고 한국에서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언젠가 아니 여러분의 생이 끝나기 전 어느 순간엔가는 제가 언급한 [여호와의 증인의 오류와 교리적 모순]이 도대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에 대해 한번쯤은 궁금증이 생기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올인하여 신세계와 영원한 생명을 바라지만, 그 순간이 여러분의 생애내에 오지 않는다면, 단 한번만이라도 이 편지를 떠올리기를 바랍니다. 단 몇 시간만의 (객관적이고 마음을 연) 연구만으로도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여러분은 혹여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 하더라도 지금의 삶이나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더 낫다라고 결론 내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저는 의아합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인생이란 다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이 소중한 인생의 순간순간을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지 못하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축복을 받으려고 희생을 하면서 지난 인생을 살아 왔는데...그 결과가 만약, 만에 하나, 잘못된 선택이었다면, 인간조직의 지침에 복종한 것에 불과하다면, 어찌 하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삶을 또 다시 내 자식에게 물려주고 세상을 떠나야 한다면, ...아~!.
이런 어마어마한 선택을 다시 한번 재고해보시라고 저는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사해 보십시오. 다시 조사해 보십시오. 저는 여러분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게 간곡히 간곡히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진실을 외면하지 마시고 맞닥뜨리기 바랍니다. 우리네 삶은 소중합니다.
봄이 오고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PS : 저는 이 편지로 여호와의 증인으로부터의 탈퇴를 선언합니다. (오랜 기간의 연구조사 결과) 여호와의 증인조직은 신권조직으로서의 성서적 권위가 없기 때문에 저를 그 어떤 죄목으로도 심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느님과 저와의 관계는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중보이며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최종 판단은 여호와에게 달려 있습니다. 제가 이 즈음에 여러분과 절교를 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여러분과의 이별을 고하지 않겠습니다. 여전히 저는 여러분을 사랑할 것이며 거리에서 만날 때 반갑게 인사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저에게 어떤 연락이나 도움을 청하면 기꺼이 달려 갈 것입니다. 제가 발견하고 연구한 방대한 자료들을 정리하고 집필하는 일은 제 여생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원하신다면 언제든 자료를 제공하거나 토론할 용의가 있습니다.
저는 다음 성구가 진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심판은 자비를 행하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무자비합니다. 그러나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 (야고보 2:13, 새번역
이 글은 여호와의 증인에서 활동적인 한 엄마가 48년간 봉사후 조직을 떠난 자신의 경험을 적은 글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나의 삶 그리고 내가 떠난 이유
사람이란 여러가지 이유로 모임에 들어오거나 떠나곤 한다. 하지만 내 경우, 이 그룹(=증인 에서 떠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었는데 이 외에 다른 믿음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남편과 나는 소위 3세대 증인이었고, 양 가족 모두는 증인으로 자랐다. 하지만 지난 4년 사이, 우리 가족 모두는 갑작스레 증인을 떠나게 되었다.
나는 증인시절 많은 것을 배웠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도 개인적 우정을 나누는 법을 배우게 되었고, 개성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법도 배웠다. 역경 가운데서 용기를 배우게 되었고 여러 다양한 환경에서 말하는 법(대처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나는 매우 활동으로 호별방문에 참여 하여, 평균 월 25-30시간을 바쳤고 48년간 중단 없이 정규적으로 그렇게 하였다. 나는 성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노력에 헌신적이었다.
나는 일반 사람들 또한 사랑하는 법을 배웠으며 그들을 후대하는 면에 매우 노련하였다. 나는 집에서 파티를 열고 다양한 사회활동을 조직하고 그런 일을 능숙히 하는 편이었다. 전문적 결혼 코디네이터보다 더 근사하게 집에서 결혼을 주선하기도 하였다. 나는 매우 재밌는 인생을 누렸고 언제나 그렇게 되도록 계획하였다. 하지만 인생에 그러한 근사한 무엇을 누리기 위하여 증인을 그만두어야할지 모른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 자신이 꽤 순종적인 사람인 줄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조금 설명해 보고자 한다. 오랜 기간 나를 짓눌러온 고민이 있었는데 그것은, 많은 증인들은 대체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보다 더 성공적인 증인으로 바라보아진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과거나 현재까지도 증인들은 대학에 가는 것이나, 집을 사는 것, 결혼을 하는 것, 아이를 갖는 것, 가족을 방문하는 것 또는 사회봉사 활동을 하는 것을 썩 좋게 보지 않았다. 내 경우 친구라고 불리는 사람, 친척들 또한 대부분 증인들이었기에 나는 그것이 전부인 삶을 산 것이다. 물론 그 테두리 안에서 행복을 느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를 사랑하는 한 엄마로서, 나는 할 수 있는 한 그들이 자라면서 많이 배우고 다양한 기술들을 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우리 아이들은 수년간 수영을 배웠고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하지만 그 사실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는데 그 이유는, 내가 아는 한 단 두 명의 다른 증인 아이들만 그러한 피아노 교육을 받았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 조직은 방과 후 스포츠조차 허락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들을 먼 여행에 보내기도 하였다. 우리 아이들의 경우 스키를 배웠고 언제나 운동을 하여 일반적으로 멋있는 삶을 누렸다. 나는 매우 매우 활동적인 사람이었다. 따라서 다양한 회중적인 행사들, 모임, 봉사 그리고 나의 남편이 25년간 장로로 활동하였기에 나는 매우 바빴으나 그런 일을 하며 즐거워하였다. 나는 배운 대로 행하였으며, 만약 어떤 규칙이나 믿음의 지식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에도 그걸 억누르면 감내 하였다.
하지만 내가 증인들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던 가장 큰 문제는, 대학 교육을 포기해야만 하는 경우이었는데, 그 당시 나는 우리가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 살고 있으며 살아남기 위하여 무언가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내 첫째 아이가 지방대학에 다닐 때 그 아이는 비공개 책망(=지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 딸아이는 그 와중에도 공부를 하며, 2명의 사람을 워치타워 조직 안으로 이끌기도 하였다. 한편, 우리 아들이 대학에 갈 때는 책망을 받았다. 그런데 그러한 강압적 분위기는 저 꼭대기, 통치체에서부터 시작된 생각임에도, 그들은 그러한 생각이 단지 지방 회중에서 자발적으로 생겨난 견해이며 그들은 하나님이 사용하는 불완전한 인간으로 여겨지게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러한 통제적이고 권위적인 그룹에 있으며 언제나 상처받는 것은 아니다. 설사, 나와 우리 가족이 비난을 받는 경우가 있더라도, 나는 항상 내 자신과 가족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였다. “오, 다른 사람들 말에 전혀 신경 쓰지 마라. 네가 옳다고 하는 그것을 하면 된다. 다른 사람도 모두 완벽하지 않으니까 그런 것에 걱정하지 마라.” 우리는 모두 양심적이었으며, 우리가 생각한바 옳다는 것을 하려고 노력했고 다른 사람들도 그러리라 기대했다. 돌이켜 보면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나는 고지식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러한 조직안의 많은 사람들은 매우 고지식하다. 이 조직 또한 전체적으로 보면 15년 전에 비해, 매우 고지식하고, 통제적이고 권위적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돌이켜보면 장로들이 매우 무자비하여 적절치 못한 조언을 하거나, 고지식하여 상처 주는 제안들을 하는 경우를 보아왔다. 어떤 장로들, 베델에 있는 경우도 포함하여, 자신들 또한 음주 문제가 있으면서도 동일한 이유로 힘없는 젊은 증인들을 제명시키는 것을 보았다. 나는 진정 아이들을 사랑하였고 그들과 대화할 필요를 강하게 느꼈으며, 그들이 진정 악한 것이 아니라면 그들 청소년들, 감수성이 예민하고 혼란스러운 그 아이들을 가벼이 지목, 책망하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소위 ‘1975년에 닥칠 아마겟돈’이라는 허위 교리가 자라나던 시대에 살았다. 물론 우리 남편이나 나는 이러한 가르침을 믿지 않았지만, 그러한 분위기에 압도당하였다. 하지만, 나는 통치체(이 조직을 통치하는 나이든 아저씨들)가 선견지명이 있어서 1914년이 아마겟돈을 맞이할 마지막 세대를 가리킬 것이라는 사실은 믿고 있었다. 따져보자면 우리 할아버지부터 나의 손자까지 무려 4세대가 이런 분위기에 감돌며 지낸 것이다.
1995년 11월, 워치타워는 ‘세대’의 의미를 변경하였다. 나는 감정적으로 미쳐버릴 것 같았지만 이런 기분을 남편에게만 알렸다. 그 후 6개월 동안 우리 막내는 수없이 자살 시도를 하는 지경이 되었다! 성서와 협회 출판물만을 읽으면서도, 그 당시 나는 모든 것에 의문이 생겼다. 우리 가족은 모두 카운슬링이 필요하였다. 나는 워치타워를 반대하는 어떤 서적을 읽지도 않았고 조직에서 떠나라고 말하는 사람과도 어떤 대화를 하지 않았다. 이것은 정말 나 개인의 결정이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처음으로 우리가족은 야외봉사에 나가지 않게 되었고 집회참석을 중단하면서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약 6개월간 집회 참석을 중단한 동안, 단지 세 명의 자매와 두 부부(우리가 한때 이끌었던) 가 찾아왔을 뿐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배교자로 알려 지게 되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믿음에 충실한 생활을 하는 동안 어느 누구도 우리를 어떤 식으로든지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순회감독자와 장로들에게 증인의 믿음에 대하여 다양한 질문을 해보았지만 그들은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었다. 이 세상 사회에서 여러 가지로 속아오던 경험보다도 조직이 우리가족 전체를 한꺼번에 이렇게 무례하게 취급하고 갑자기 지목 처리한 것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더 이상 증인이 아니다. 왕국회관 참석을 중단하는 것은 나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그들을 나의 친구로 나의 가족으로 여긴 반면, 그들은 그 이후 수년간 집에서 집으로 입소문을 퍼뜨리며, 나를 ‘사단’으로 불리게 한 것이다. 이제 나는 친구라는 증인으로부터 사단주의로 불리게 된 것이다. 나는 또한 미쳤다는 소문,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소문, 굉장히 아프다는 소문, 가끔 정신이 돌아오면 곧바로 다시 이상해진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더 이상 그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다시 작지만 행복한 가족으로 돌아온 것이다. 매우 고통스러운 기간도 있었고 지금도 약간 그렇지만, 지금이 훨씬 행복하고 예전에 비하여 훨씬 정상의 삶을 살고 있다. 우리 막내도 잘 하고 있고 다시 대학에 다닌다.
여호와의 증인을 떠나면서 나는 어떤 유익을 얻었을까?
1. 나는 독서를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예전에 증인을 반대한 무엇을 읽거나 그것을 허락받지도 않았었다. 나는 순종적이기 때문에 대학에 가는 것을 허락받지 못하면서 증인으로 자랐지만 이제 나는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하라고 격려한다. 무언가 자신을 돕기 위하여 추가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알게 되었으므로 우리 아이들에게 교육에 대한 다양한 선택의 자유를 주고 있다.
2. 나는 비열한 취급을 원치 않고 공정한 대우를 원했다. 내가 중단하자 세 명의 자매가 찾아 왔었다. 내가 그들 예전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자 그들은 매우 퉁명스러웠다. 내가 전화로 그들에게 메시지를 남기려 하자 그녀의 남편이 수화기를 들고 ‘도대체 무얼 원하는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
3. 생생히 기억나는 이러한 기만당한 일들은 결국 우리를 조직에서 밀어 내게 된 것이다. 나는1975년을 경험한 세대고 이 ‘조직사회’는 전혀 믿음직스럽지 않음을 알았다. 그들이 ‘세대’의 개념을 바꾸었을 때, 나는 감정적으로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어느 누구도 이 조직이 얼마나 큰 문제를 변경한 것인지 언급 하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조직이 진리를 변경하는 대로, 그들이 하라는 대로 묵묵히 따라갔었던 것이다.
4. 우리 아들이 자살을 시도했을 때 지역 장로들 그리고 주위 증인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 우리 아들은 배운 대로 믿고 행했을 뿐인데,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왜 그가 회중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목을 받았는지 알지 못했고 그들 중 누구도 설명하여 주지 않았다. 도저히 그 이유를 짐작하는 것이 불가능 했다. 그 후, 그는 사소한 흡연문제로 곧 제명당하였다.
5. 내가 아는 증인 친구 중 너무 너무 많은 이가 우울증과 항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느끼기를, 이 길에서 속히 변화하거나(떠나거나),
아니면 그들과 똑같아 져야만 할 것이라고 느꼈다.
6. 나는 수혈과 병역 문제를 세심히 공부하였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이 조직이 사회의 평판을 우려하여 자신의 원칙을 변화시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초창기 조직의 규모가 작았을 때 그들의 원칙은 모두 훌륭한 것이었다. 하지만 점점 규모가 커지고 자산이 거대해지면서 그들은 반대자들의 정치적 사회적 핍박 등을 물리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조직은 일개인의 문제는 더 이상 문제되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사란 전체의 관리, 통제일 뿐인 것이다.
7. 내가 증인을 떠난 이유는 나의 고유한 결정들을 실행할 여지가 없다는 것에 지쳤고, 존경스럽지 못한 권위적 그룹의 제압에 피곤하였기 때문이다. 거의 반백년 나는 견디었고, 이젠 성장해야 할(변화해야할) 때인 것이다.
이 짧은 스토리는 내가 증인으로 무엇을 느꼈는지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나는 건 나는 아주 오랜 기간 ‘리더를 따르라’는 아이들 게임을 한 것이다. 이 게임은 대단한 모험으로 시작했다. 우리는 바위를 넘고 장애물을 뛰어 넘고, 돌고, 틀어서 가야하는 온갖 경로를 따른 것이다.
아이들과 이런 게임을 하는 건 물론 재미있는 것이다. 우리는 가시덤불과 진흙구덩이를 따라 건넌 것이다. 그중 일부는 넘어지고 바위에서 깨어지지만 우리는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맨 뒤를 따르던 아이가 조용히 물어보았다.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예요? 몇몇은 다쳤어요.’ 그러자 앞서간 누군가가 그의 머리를 때리며, 리더는 외치기를 ‘나는 너희보다 똑똑해, 나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아. 그러니 게임이나 하며 나만 따라오면 돼.’ 결국 그 아이는 그 리더도 자기와 같은 평범한 아이일 뿐임을 깨닫게 된다. 그 아이는 자꾸 다치는 것에 지치기 시작한다. 더 이상 게임이 재미있지 않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혼자서 게임을 하거나 자기와 같이 놀 다른 친구를 찾는다. 그가 ‘리더를 따르라.’는 게임을 그만두자, 몇몇 거친 아이들이
외쳤다. ‘우리는 더 이상 너와 놀지 않을 거야. 너는 우리 친구가 아냐.’
그동안 이 조직이 변경 시켜온 것들을 돌아보자면, 이젠 이들은 완전히 다른 그룹으로 변모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믿음에 충실한 주요 증인들은 이러한 점을 알아차리지 조차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1998년에 주의 만찬 기념식에 전년도에 비해 약 426,000명 정도 줄어든 것에 주목했다. 우리 부부 말고도 정신을 차려 깨어난 사람이 더 있는 것이다. 이 조직은 지금이 영적 낙원이라고 선전하지만, 내가 보기엔 영적 광분의 집단촌일 뿐이다.
내가 현 증인들에게 줄 수 있는 충고는 “제발 친절하세요, 그리고 항상 품위를 지니세요.”
만약 당신이 제명을 당했거나, 가족과 친구로부터 지목을 당해 떨어져 있더라도 항상 그들과 대화하라는 것이다. 당신의 부모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라. 만약 그들이 계속 당신의 전화를 피하고, 편지로 연락하거나 당신과 대화하기를 거부한다면, 그들은 친절하지 못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책임을 져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지구상엔 당신이 솔선하여 찾는다면 당신에게 친절하게 지내어 줄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다.
보낼수 없는 편지
김자매,
우리 딸아이가 그러데요.
김자매가 보고싶지 않냐고요.
저는 이리 대답했습니다.
김자매는 엄마 가슴속에 있기 때문에 보고싶다는 말은 안한다고.
증인 조직을 떠나고 나서 처음에는
조그마한 동네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서로 모른척하고 지나가게 될 것이 두려웠습니다.
김자매에게 나는 그럴 자신도 없고,
나를 외면하는 김자매를 본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도 큰 고통이 될 것 같아
그러한 상황은 영원히 없었으면 하는 아주 절실한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자매가 주로 다니던 길을 지나노라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근데 참 이상하지요.
자매와 만날 수도, 아는 척도 못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전 자매가 다른 먼 곳으로 가는 것도 싫습니다.
아는 척을 못하는 사이이지만
내가 느끼는 바람, 날씨 사시사철 변하는 자연은
간접적으로 같이 느끼며 살고 싶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욕심이지요.
우리 집 가는 길가에서 봉사하고 있던 자매를
운전하며 스치고 지나갈 때 자매는 벽 쪽으로 몸을 돌려 버리셨지요?
차라리 얼굴만 못 본 척 돌려도 될 것을...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예전엔 자매가 우리의 장군 같고, 대장같이 어깨가 넓고 힘있어 보였는데,
이제는 초라해 보여 가슴이 너무도 아팠습니다.
자매, 자매는 나의 평생 그리운 나의 친구요 자매입니다.
내가 세상을 떠나는 일이 있을 때,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사람을 말해 보라 하면
그 사람들 중에 자매가 들어있을 겁니다.
탈퇴서를 제출하고 회중의 공식 발표가 있기 전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날 수 있던 날
우린 그날이 마지막 만남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서로에게 긴급한 말에 밀려 정말 필요한 이야기를 못했습니다.
제가 조직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자매에게 말했을 때,
자매는 "증인 조직보다 더 깨끗한 조직을 찾게 되면 그때 떠나라.
그땐 말리지 않겠다"고 하셨지요.
그때, 전 어디로 가야할지는 몰라도
여호와의 증인의 생활 자체가
조직의 우상숭배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면
어디로 떠나야할지 몰라도 이곳을 떠나는 것이 먼저일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또 자매는 저에게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느냐고 물었고,
전 하나님은 신뢰하지만, 통치체에 대해선 직접 아는 바가 없으며
무조건적으로 믿을 수는 없다고 대답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조직을 떠나고 자매와의 이 대화를 가끔씩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 앞에 깨끗한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러한 사람으로 이루어진 어떤 조직도
하나님 앞에 완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생각해 볼 때,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불완전한 인간들로 이루어진 조직의 구성원들을 을 성령으로 이끄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모으시는 것 보다,
개개인의 심장과 신장을 살피는 하나님께서 그분이 주신 성경을 통하여
직접 성령으로 하늘로부터 오는 양식을 먹이고 돌보셔서
그 하나님의 사람 개개인을 움직여 나중에 모아보니
큰 하나님의 군대처럼 나라와 민족과 언어와 풍습에서 나오는
당신의 백성의 무리가 되는 것이 하느님에게는 더 어울리는 능력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자매,
자매는 신앙적으로 정착민 생활을 오래 해 왔고, 저는 늘 떠돌이였습니다.
우린 어쩜 영적인 면에선
아브라함처럼 하나님 인도하심을 믿고 떠난 여행자 일지도 모릅니다.
여행자 부족이 오랫동안 조직 생활을 하다보면
전통도, 문화도, 질서도 자리잡아 그곳의 생활이
세상의 중심인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정착 부족민들의 눈으로는,
떠돌이는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유랑민에 불과 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여행하는 유랑자들에겐,
정착 부족민이 느낄 수 없는 그 조직만이 가지는 독특한 냄새와
그 조직이 앞으로 향할 때 일어나는 바람의 방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부족민이 자리잡은 그 자리에서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유랑민은 유랑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닐진대,
우리가 가야할 곳의 방향이 맞는지 서로 의논하고 함께 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는 서로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
자매, 우리 서로가 얼마나 사랑하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우리가, 예전처럼 성서에 나오는 우리 하나님 이야기를 하며
왜 함께 기뻐하며 행복해 할 수 없단 말입니까?
왜 예전처럼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며 함께 하나님께 감사해하며 기뻐할 수 없다는 말입니까?
제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과 사랑과 공의와 지혜를 생각하면
가슴이 뿌듯해지고, 그때처럼 어깨가 으쓱해지는데 말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지도 않는
예수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통치체에 관하여 의심하는 것이
어찌 접촉불가의 존재로 자매와 인사도 못하게끔 된다는 말입니까.
자매, 제가 증인을 떠난 것이
협회가 UN에 가입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전 협회가 UN에 가입하면 왜 안되는지에 대해서는
그당시에 증인조직을 떠날만큼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놀랐던 것은
UN 가입 사실을 회중에 문의했을 때의 반응과 협회에서의 반응,
그리고 UN의 답변에서였고, 그것에서 참담함과 절망을 느꼈습니다.
협회는 단순한 도서관 이용 때문에 가입을 했다고 밝혔고,
UN의 공식 답변은 도서관 이용은 개방되어 있어 굳이
UN의 NGO-DPI에 가입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유일한 의사 전달 통로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협회의 반응은
너무도 구차하고 옹색하여
초라한 인간 조직의 한 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놀라움을 금치 못한 것은
조직의 성원들의 눈과 귀가 오직 조직에서 내려오는 출판물과 협회 결정에
로보트처럼 입력만 되도록 되어있고,
조직을 의심하는 어떠한 생각조차도
더러운 것에 접한 듯 피하는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의심을 한 것이 아니고, 워치타워 협회가 행했던 사실을 알고
왜 그러냐고 물어본 것이 어찌 영적인 더러움이겠습니까?
그 사실에 다가가면 어찌 영적으로 위험한 인물이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예수그리스도의 중보에 믿음에 아무런 변함도 없는데 말입니다.
정말로 워치타워 통치체가 하나님의 유일한 의사전달 통로이고
참으로 이 조직이 하나님의 유일하신 참 조직이라면
저는 정말로 억울한 희생자이고
저에게 분별력과 생각한 것을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하나님은
성서에서 배운 그런 하나님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별력을 주셨는데
이 사건으로 이상하다, 인간 조직의 냄새가 너무 많이 느껴진다고 느끼는 것이
어찌 배교의 시작이며 죄가 되겠습니까?
이 사건으로 하나님의 유일한 의사전달 통로라 자칭하는 조직에
구체적인 의심을 하게 되었고,
정말 이 조직이 하나님의 유일한 의사전달 통로인지 조사해 보게 되었고,
이때까지 이 조직의 행로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저는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너무나 많은 증거들을 구체적으로 갖게 되었고
하나님의 유일한 의사전달 통로라는 이 조직에서 이탈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저의 양심이라고 결론내렸습니다.
저의 마음이 진정으로 조직으로부터 떠나게 된 것은
어떤 사실 그자체가 아니고,
알게된 사실을 문의하는 과정에서
이 조직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자매는 "우리 손잡고 베델에 가서 직접 물어보자"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미 알고 있었거든요.
협회에서는 이미 회중으로 전달된 공식 내용 말고는
어떠한 답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단지 남아있을 우리 자매에게 불리한 처우가 걱정이 될 뿐이었습니다.
지금도 혹 이일로 우리 자매에게 누가 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램뿐입니다.
저와 친분있는 분에게 같이 봉사를 갔을 때
제가 한 말에 놀라면서도 동의하셨던 그 말 생각이 나시는지요?
"저의 종착역은 여호와의 증인이 아닙니다. 제 종착역은 하나님께로 이지요."
"여호와의 증인이 틀리다면 저는 또 떠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찾아본 중에는 이곳이 참 인 것 같습니다"라는 말입니다.
그때 분명히 자매도 틀렸다고는 하지 않으셨지요.
자매,
저는 한낱 초라한 먼지 같은 사람에 불과하지만,
예수 그리스께서 대속하여 주시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지극히 개인적인 신앙에도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가끔씩 파수대와 출판물을 살펴보면
워치타워 간행물들에 사람의 말들이 너무도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유대교도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완벽히 지키고자
율법을 세분화시키고 현실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수많은 교리들을 만든 모습들이 여호와의 증인 통치체에서 결정된
세부적인 행동 지침으로
각 회중으로 내려오는 모습들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매, 지금 제 솔직한 심정은
차라리 제가 틀렸고, 자매가 옳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생각은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습니다.
왜냐하면,자매는 돌이키기에는 너무 멀리 들어가 버렸고,
너무나 많은 시간과 열정과 희생을 치렀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제가 조직에 대해 오해하였다면,
탈퇴자로 이제는 배교자의 이름표를 조직에 의해 달게 되었을지라도
어떤 대접을 받더라도 회개하고 돌아가는 것이 쉽기 때문입니다.
정말이지, 자매가 옳고 제가 틀렸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조직을 나온 지 시간이 조금 흘렀지만
자매와 함께 연구사회하던 저와 친분있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못했습니다.
몇 년 동안 자매가 피땀으로 봉사를 해 놓은 터전에
전 도저히 재를 뿌릴 수 없었습니다.
제가 자매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을 얼마나 아까워했습니까?
도저히 도저히 자매가 메고 있는 밭에 제 손으로 재를 뿌릴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양심의도리라면 도리 차원에서
간접적으로 여호와의 증인을 그만 두었다는 사실만 전달했을뿐...
자매,
저, 정말로 대책없는 바램 한가지만 말해볼까요.
우리가
나이가 많이 들어
나중에, 나중에,
제가 시골에 작은 집을 짓게 되면
나란히 집한채를 더 짓고 싶습니다.
정원엔 많은 들꽃들을 심어놓을께요.
자매가 꽃을 아주 좋아하잖아요.
그땐 오로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만 가지고 함께 성경읽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곱씹으면서 행복하게 살아요.
예전에도 제가 늘 그랬잖아요.
난 늘 미안하게 내 먹고 살려고 돈번다고...
자매는 늘 하나님 일만 하면서 고생하니,
돈은 내가 내야한다고...
이 소원이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것이 아니면 계속 기도하렵니다.
전 한때 여호와의 증인이었습니다.
제가 간절히 믿어서 다녔던 것이 아닌 단지 엄마가 다녔기 때문에 저를 이끌고 가셨죠.
그 당시 한 8살 정도 됐었죠.
저는 단지 끌려 다닐 뿐이었습니다.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니 성경을 요약해서
독후감식으로 문서를 만들어서 연설이라는 것도 했구요.
한 16살 정도 일겁니다. 이 쯤 되니 종교에 대한 믿음이 불확실해지더군요
우리는 피조물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가 창조했을 수도 있고 당연히 창조주가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면 여호와의 증인이 틀린 건 아니겠다. 이렇게도 생각 할 수 있죠.
하지만 수많은 종교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기독교 불교 천주교는요? 군대에서도 이 세 종교는 필수로 하는데 그렇다면 군대가 틀린걸까요? 물론 군대가 이 세 종교가 진리여서 보낸 것이 아니겠죠. 단순히 휴일에 병사의 잡생각을 없애려고 보내는 거겠죠.
저 또한 군대를 다녀왔기 때문에 종교가 여러 방면으로 필요하긴 합니다
더군다나 후임병은 더더욱 필요하죠.
16살 이후로는 이 증인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 증인이 진리라면 타 종교인들은 누굴 믿고 있는 걸까요?
여호와의 증인의 존재도 어디서 월급이 나오는 것도 아닌 것 같더군요 단지 증인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헌금으로 유지를 하는 것 같은데 여기까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워치타워가 여호와의 증인의 본부라고 하죠? 우선 워치타워에서는 팜플렛이 출간 됩니다. 이름이 파수대, 깨어라, 그리고 신간 성경도 나오구요.
갖가지 팜플렛이 쏟아져 나옵니다.
지금 엄마 방에 가면 그 팜플렛이 방 한 가득 있습니다.
그런데 어릴 때 부터 봐 왔었는데 그 팜플렛은 하나같이 워치타워에서 만드는 건데 워치타워에는 신의 호출을 받는 신의 사자가 있는 걸까요? 어떻게 그렇게 많은 팜플렛을 계속 만들 수가 있죠?
단순히 성경의 내용을 요약하고 되새김질 해서 만든다 하더라도 그 양이 실로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 합니다.
아니면 워치타워는 장사꾼인가요? 언변 좋고 글재주 좋은 사람이 샤샤샥 해서 그럴싸하게 만들어서 증인들을 현혹하는 걸까요?
전 여호와의 증인이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워치타워 정말 베일에 쌓여있는 집단이라 생각 합니다.
과거 증인이었던 분들의 말을 들어 보면 “증인들은 자신의 잘못은 헐뜯으려고 하지만
워치타워의 잘못을 옹호하려는 성질이 있다” 라고 하시더군요.
솔직히 16살때 이 종교를 그만 둔 것은 친구들로 부터의 안 좋은 시선 때문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너 무슨 종교 믿니?” 라고 할 때 기독교요 (불교,천주교) 라고 하면 “그렇구나!” 뭐 그런 반응이죠.
하지만 여호와의 증인이요 라고 하면 대부분 안 좋게 바라봅니다. 군대 안 가려는 집단이고 또한 집에 무작정 들어오려고 한다고 ... 대부분 싫어합니다.
저 또한 이제는 싫구요.
하지만 워치타워 전 그 집단의 속을 알고 싶습니다.
피해자를 줄이고 싶습니다.
1970년대 초반에 워치타워 여호와의 증인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전 광풍처럼 이 조직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게 되었는데 한 동안 정말 꿈같은 나날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저의 모든 꿈과 소망과 기대가 이 조직 안에서 이루어지고 성취되고 저를 만족케 할 것이라는 환상이 들면서 더 이상 세상의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3년 동안의 희열과 기쁨
세상 물질 명예 권세 부귀영화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을 체험하며, 제 안에서 잉태되어 자라난 지상낙원에 대한 소망이 저의 전 인생과 미래를 투자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낙원은 저의 목적이요, 소망이요, 믿음이었습니다. 저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은 희열과 기쁨에 도취되어 보낼 수 있었습니다.
‘약 3년 동안은 말입니다.’
이 집단이야말로 하나님이 말세에 남겨두신 깨끗하고 정직한 단 하나, 참 종교의 남은 자 교회로구나!’ 이 종교 조직을 알게 하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한없는 감사와 감격 속에서 살았습니다.
‘왜 내가 진작 이 조직에 들어오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을 곱씹으며 말입니다. 저의 믿음은 하늘을 찌를 듯 했고 한 때는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을 정도로 낙원의 기쁨을 맛보는 체험도 했습니다. 성경만 보고 있으면 그것이 천국이요, 저에게 최고의 꿈같은 시간이 되어 주었습니다.
제가 이 조직을 위하여 목숨 걸고 충성해야 하겠다는 의협심(義俠心)은 제 인생을 포기하게 할 정도로 맹목적인 추종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오래된 분들에게 넌지시 듣게 되는 충고 아닌 충고는 “너무 열심을 내지 않는 것이 일상에 좋을 거야?”라는 식의 말이었습니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답니다. 역시 신념과 사상은 어떤 틈만 생기면 모든 구조가 마치 피라미드처럼 연결되어 있기에 와르르 무너지는 취약점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참 신앙과 신념은 그 정체를 서서히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간 근근이 명목만 유지하는 그런 종교생활이 반복될 뿐이지요. 이 조직에 들어 온지 3년 이후 부터는 말입니다. 이것이 모든 이단의 피할 수 없는 함정이요. 이를 감추기 위하여 스스로 외골수로 빠지고 독단에 흐를 수밖에 없는 치명적 오류입니다.
서서히 드러난 교리의 조작
이제 10년이란 조직 생활에서 가졌던 신앙심마저 다 까먹고 남은 것은 그저 성경을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풀어대는 잔재주와 이중성으로 내 영혼은 피곤하여 지쳐 버리고 그날 그날 연명하는 종교 생활에 환멸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증인들이 당연히 거치는 과정이리라 생각하지만, 노련한 여호와의 증인의 균형 잡힌 신앙생활이란 이름으로 자기를 속이는 이중성이 여기에서 형성되게 되어 있으며, 언제나 겉과 속이 다른 근사한 외식이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경우는 “이것이 아닌데” 하면서 한 발을 빼고 언제든지 도망칠 궁리를 하게 되는 것이 뭐 정해진 코스이지만, 누구하나 이를 내색하는 자는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겁니다. 왜 얼마나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가식화 하는지 이것이 체질화 되었기에 어느 누구도 감히 조직에 불만을 갖게 되거나 교리에 이의를 제기할 자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하고 지내는 있는 것이 솔직한 표현입니다.
만일 그런 내색을 보인자가 있다면 그때부터 그 사람은 어느새 부터인가(?) 지목의 대상이 되고 경계의 대상이 되어 그를 주시하게 되는 그야말로 저 동토의 나라에서나 있을 법한 감시체계가 작동하는 것이 바로 워치타워의 체계입니다. 언제 여호와의 증인이 다른 종교 조직에 대하여 진지하게 연구는 해 보았나요? 그저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내 것에 갇혀 내 것만 옳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다른 종교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진지하게 연구하는 자세마저 저들에겐 없는 것입니다.
결국 통치체의 일방적인 독주와 비성경적임을 지적한 나는 그 조직에서 견디지 못하고 조직은 배교자란 누명을 씌워 추방 시키게 된 것이지요. 너무나 우스운 것은 사법위원이란 자들이 나에게 와서 확인한 것이라고는 “당신은 통치체를 유일한 신권조직이라고 믿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였습니다.
인간이 만든 조직이 절대 기준
지금 와서 생각되는 것이지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가?” 라고 묻지 않았던 것이 너무 다행스런 일입니다. 이들 스스로 자신들이 인간이 만든 통치체의 조종을 받고 있는 배교자 집단임을 자인한 꼴입니다. 참과 거짓의 기준이 인간이 만든 조직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신권조직임을 믿는지 안 믿는지로 결정되다니요? 이러고도 여호와의 증인이 성경을 믿고 있는 참 종교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러울 뿐이요. 잠시 동안이나 이곳이 참 조직이라 믿었던 제 자신이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히 이 조직을 박차고 나갈 엄두는 내지 못 했죠. 아니 그럴 용기마저 없었습니다.
아무리 조직이 부패하고 썩었을지라도 여기에 뼈를 묻을 각오로 전적 헌신을 해 온 터라 달리 생각을 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죽으나 사나! 여기서 떠날 수는 없지 않은가요? 늘 언제나 여호와증인 조직에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위로 아닌 위로를 삼는 성구가 있습니다. "주여 우리가 어디로 가리이까?" 베드로의 "쿠오바디스도미네"(quovadis domine)도 아니고 체념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절규입니다.
이 조직이 잘못 된 것도 알고, 거짓 예언을 한 것도 알고, 사랑이 없는 것도, 진실성이 없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이 조직만한 곳이 어디 있겠는가? "당신들이 이 조직을 떠나서 어디로 갈 곳이 있단 말인가?" 란 협회의 질문에 아무도 다른 곳에는 참이 존재할 수 있다고, 아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대단한 세뇌의 결과이죠).
결국 이 조직이 참이기 때문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갈 데가 없어 못가고 있는 그 신세가 너무 안타깝기만 했답니다. 그래서 저는 더 이상 거짓 종교집단에 더 이상 머물 수 없다고 스스로 박차고 나온 것이 아니라 자의반 타의반으로 여호와의 증인 조직을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됩니다.
애정 쏟은 조직 나오다
10년 이상이나 애정을 쏟은 이 조직에서 떠나는 것을 너무나 아쉬워하며 말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도저히 이단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자들이 자력으로 구원을 이루어 보겠다고 하면서 도달하게 되는 곳이 바로 이단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는 간곳이 없고 인본주의가 판을 치는 곳 어설픈 논리와 이론과 사상으로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의식화 시켜 하나의 생각으로 묶어 버려 인간의 이성을 말살시키는 곳이 바로 이단 사이비 집단입니다.
아마도 저를 이렇게 쳐 내지 않았다면 지금도 난 그 조직을 감히 제 발로 떠나지 못했을 겁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 역사 없이는 도저히 이곳을 빠져 나올 수 없는 곳, 아니 빠져 나온다 할지라도 기독교 복음을 받아들일 확률은 0.1%도 안 된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어 갑자기 배교자로 낙인찍히는 영광의 상처는 안고 살게 되었지요. 이 사건으로 인하여 왜 여호와의 증인은 사상이 의심되는 자를 제명시키고 단교의 쓴맛을 보게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말 그대로 "조직의 쓴맛" 을 보여 준 것입니다. 너무나 견디기 어려운 외톨박이 신세, 그리고 이상하게 보는 눈초리 아마도 왕따의 원조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차가운 형제들의 시선은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으며, 인격 모독 그 자체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당사자는 스스로 격리 시키고, 회중 형제들의 접근을 차단시켜 조직의 와해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고도의 전략인 것입니다.
종교를 떠나게 된 것도 서글픈 일인데 절대적으로 교제를 끊게 하여 스스로 자포자기 세상에서 타락으로 떨어지든가? 아니면 “제가 죽을죄를 졌습니다”라고 사죄하고 다시 그 치욕을 감수하고 조직 안으로 들어오든가? 양자택일 하게 하려는 것이 숨겨진 음모입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사랑도 가족 형제지간의 정도 다 끊어버려야 하는 냉혹함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배교가 전화위복
어느새 저는 여호와의 증인 배교자가 되었고 절대로 가까이 하면 안 되는 사람으로 낙인 찍혀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화위복인가요? 아무튼 자의반 타의반 이 조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얼마나 서운했던지, 못이기는 척하며 “‘통치체’가 하나님의 유일한 신권조직이라는 것을 믿는다”며 조직에 머물러 있을 걸하며 후회도 했답니다. 이토록 이단의 사상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인간의 정을 파고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조직을 떠난 제겐 창조주에 대한 신앙심이 없음이 밑바닥처럼 드러나 버리고 결국 조직 사상에 물들고 관념에 포로가 되었음을 직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조직을 떠나서는 어떤 것 하나 스스로 내 주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믿고 고백하는 신앙이 아예 없다는 거예요. ‘아하! 그 동안 예수를 믿은 것이 아니라 인간 조직을 믿고 신뢰 했구나?’라고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지요. 아주 쓰디쓴 경험을 통해서 말입니다.
인본주의적인 시각과 인간적인 시각으로 성경을 보다가 지쳐서 그만, 회의론자가 되고 맙니다. 구세주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인 믿음은 찾을래야 찾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불신자였습니다. 여기도 저기도 함께 할 수 없는 그런 신세가 되고 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가나안을 향하여 나갔지만 광야에서 모세에게
우리를 왜 여기까지 이끌어 내서 이런 고생을 하게 하냐고 불만을 토로한 것처럼 조직을 박차고 나온 내 자신이 한심하기까지 할 정도로 나는 깊은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지요. 결국 나의 신앙의 혼돈의 계절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진리에 대한 고독한 싸움
이때부터 진리에 대한 외롭고 고독한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제가 발을 디딘 곳마다 기독교의 은혜 복음은 아니고 다 이단의 그림자가 넘실거리는 행위구원론의 가르침이 있는 그런 종교 집단들이었다는 것이지요. 이단은 잘 빠지는 체질(특성)이 있으며, 이단은 사상이요, 하나님의 영의 역사라는 것을 철저하게 배우게 하셨습니다. 스스로의 연구로 성경을 깨달을 수 있고, 제가 언제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제가 노력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이 생각이 죄요 바로 회개해야 할 그 불순종임을 알게 하셨던 겁니다.
제가 연구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임해야 하며, 제가 하나님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택하시고 사랑해 주셔야 하며, 스스로 노력해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가 오셔서 제 대신 죽어 주시고 피 흘려 속죄해 주신 그 은혜를 믿고 거저 받게 되는 것이 구원임을 알게 하셨던 것입니다.
드디어 인간의 노력만으로 진리에 이를 수 없음을 처절하게 깨닫게 되면서 주님 앞에 항복하게 됩니다. 이 깊은 방황의 늪에서 벗어나 구세주 예수 앞에 서게 하였으며, 제 자신의 실존을 보게 하였습니다. 주님을 만나는 체험과 더불어 제가 죄인인 것이 실감이 나고, 이제까지 찾아 헤매던 때에 그 하나님은 이미 제게 와 계셨습니다. 구원은 노력하여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가 이루신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내 것이 된다는 사실과 왜 그토록 삼위일체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았던가? 왜 그토록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행위구원에 집착하게 되었던가? 이것이 바로 죄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하신 것이지요. 회개란 바로 어떤 죄지은 것 하나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을 이루려 했고, 내 힘으로 율법을 지키려 했으며, 내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이 교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오직 은혜의 선물
모든 것이 일시에 믿어지고 깨닫게 하시는 은총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진리는 제가 성경을 풀어 해석해 내는 것이 아니라 제가 죄인임이 성경에 의하여 해석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조명에 의하여 내가 구원 받아야 할 타락한 죄인임이 폭로되는 것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나의 긴 방황의 터널을 지나가는 순간입니다.
드디어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진리는 제가 연구하고 탐구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진리의 조명 아래 내가 회개할 자로 드러나야 하는 존재임을 알게 될 때만이 주님은 나의 구세주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진리가 믿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간단하게 표현했지만, 이단 사상에 찌들었던 종교의 위선을 벗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으며, 이 질긴 이단의 영을 떨쳐 버릴 수 있게 된 것도 오직 물 붓듯이 부어주시는 성령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노 춘길 입니다. [1]
현재 나이 50세이며 서울 수유동에서 세탁소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의 경험담을 하나님 앞에서 한점의 거짓 없이 형제들에게 알리겠습니다
저는 1973년 8월 3일 하나님의 승리(현 동대문 축구장) 국제 대회때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 당시 협회 발표 1975년에 종말이와 증인들만 낙원 간다는 말에 너무나 기뻐서 다니던 고등학교를 중단해 가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정규 파이오니아를 약 4년 간 했습니다.
1979년 3월 15일 중립 문제로 3년형을 받고 처음에는 남한산성(육군 교도소)에서 6개월 간 충성했고 그 이후 강릉 교도소에 이감이 되어 3년에서 몇 개월 빠진 1981년12월 25일 성탄절 특사로 출옥을 했습니다.
잠시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였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임신을 했습니다.
임신 8개월쯤 되었을 때 저의 행복을 앗아갈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비군 훈련 통지서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예비군을 거부하면 징역 1년에서 최고 3년이라고 법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또 감옥 가든지 아니면 훈련을 받든지 선택을 해야 되었습니다.
전에 징역을 살 때는 혼자였지만 지금은 가족이 있어 상황은 달랐습니다.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저의 회중 장로에게 찾아가 이 고민을 알리니 개인 양심 문제라 했습니다.
협회에도 편지를 써 저의 고민을 알리니 개인 양심 문제라는 답장만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훈련 날짜는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밤에 잠이 안 올 정도로 저의 자매와 고민을 했습니다.
또 감옥 가야 하나 생각하니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 했습니다.
과거에 남한 산성에서 일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하루 종일 매 맞았습니다. 쇠창살 사이에 손가락을 넣은 후 사정없이 헌병들에게 맞았습니다. 너무나 손이 아파 몇 개월이나 밥을 제대로 못 먹었습니다. 밤새도록 잠 못 자고 벌도 섰습니다. 겨울에 눈 위에서 팬티 바람으로 뒹굴었구요. 가슴을 많이 맞아 가슴이 아파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습니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정도로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그 당시 전두환 정권 시절이라 전국적으로 순화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우리 증인들은 배로 고통이 심했습니다. 그래서 3년 징역이 백년 정도 긴 세월 같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또 감옥을 가야 된다고 생각하니 죽어도 그 지긋지긋한 감옥은 가기가 싫었습니다. 아니 무서웠습니다.
지금은 만삭이 된 아내가 있기에 제가 감옥 가면 가정은 풍비박산 되는 것 너무나 뻔하였습니다.
제 가슴을 억누르는 현실에 저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때 여호와께 기도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성경책을 펴놓고 자매와 함께 기도했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저는 여호와의 증인 조직에 남아서 평생 당신을 섬기고 싶습니다.
그런데 전 이제 죽어도 감옥 가기가 싫습니다 아니 못 갑니다 만약 가면
저의 아내는 어떻게 하며 배속 아이는 누가 돈벌어 키웁니까?
우리 가정은 파괴됩니다.
성경에 보면 감당할 시험 밖에 주지 않는다 했는데 저 또한 만삭이 된 아내를 버려 두고 감옥 가서 우리 가족이 함께 죽음보다 더 한 이 고통을 받는 것 솔직히 감당할 수 없는 시험입니다 지금은 솔직히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우리 여호와의 증인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고통을 받아야 낙원 가고 평생을 이렇게 고난을 받아야 구원 줍니까?
사랑이 많으신 여호와 하나님!
만약 살아 계시다면 저의 기도를 듣고 계시다면
저에게 직접 말씀해주십시오.
저의 자매는 증인을 하는 과정에서 집안에서도 버림받아 어디 기댈 때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처와 자식이 어찌되든지 말든지 감옥 길을 꼭 택해야만 됩니까?
여호와 하나님!
직접 저에게 말씀을 해주십시오.
저는 밤마다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하는 과정에 저의 아내와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기도한지 7일 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한참을 울면서 기도하고 있을 때 눈물 방울이 성경책에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매 끝으로 성경책에 눈물 방울을 닦고 있을 때였습니다.
눈물 방울과 함께 적셔져 있는 어떤 성경 구절이 제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겉옷을 팔아 칼을 사라" (누가 복음22:36).
전에는 이 성귀를 봐도 그냥 지나치곤 했지만 지금은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습니다.
돈이 없으면 그만이지 자기가 입던 귀한 옷까지 팔아서라도 칼을 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저는 놀랐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른 성경 말씀도 생각이 났습니다
예수님이 체포당할 즈음에 베드로는 방어용 목적에 칼을 지니고 있었다는 말씀과 아마 기록에는 없지만 12사도 모두가 예수님의 지시에 이때 방어 목적에 칼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또 있습니다.
늘 아는 성귀이지만 현역 군인의 신분으로 백부장 고넬료가 침례를 받은 사실 말입니다.
저는 처음에 제대 군인이 아닌가 했는데 사도행전10:7절에 보면 "한결같은 군인"을 데리고 다녔다는 기록을 봐 현역 군인임을 확신했습니다.
제가 기도하는 이 밤에 많은 성경 말씀과 생각으로 뜬눈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아침이 새롭게 밝았습니다.
아 훈련을 받아도 되는구나! 군인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구나!
성경에 창녀 라합도 구원을 받은 사실이 있는데 군인도 구원을 받을 수 있구나!
성경에 "누구든지?군인도 포함하여 조건이 없음?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또 성경에 “누구든지?군인도 포함하여 조건이 없음?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않으리라."
아침 햇살의 찬란한 태양처럼 그동안 얼어붙었던 내 마음이 눈처럼 녹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3년 간 감옥에서 고생한 이유는 내 마음이 스스로 감옥이 되어 가두어 두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제 해방되었습니다 !
이제 자유를 찾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는 자매와 함께 눈물을 닦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침략 국가라면 몰라도 방어 목적으로 총을 드는 것은 죄가 안된다는 성경 적 분명한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훈련을 받았습니다.
마음이 편하였습니다. 홀가분 하였습니다. 자유! 행복!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옛날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훈련을 받으면서 동료 청순한 예비군 아저씨들을 보면서 하나님은 이 많은 사람을 죽이고 우리 증인들만 구원 준다는 협회의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허무 맹랑한 말인지 그 동안 믿었던 내가 너무 어리석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걱정이 되었습니다.
협회가 겉으로는 병역은 개인 양심이라고 하지만 저를 그냥 놔 둘 리 만무하였습니다.
생각했던 대로 회중 장로나 형제들이 3년이나 충성을 지키고 나온 후 예비군 문제에 타협을 했다며 이해가 안된다고 문제를 삼았습니다. 그리고 집회 때 장로 형님과 형제들이 저에게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집회 후 모임을 가지자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개인 양심으로 훈련을 받았다며 절대로 타협은 안 했다고 했습니다.
제가 계속 회중에 남아서 여호와를 섬 길 수 있도록 해달라고 탄원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예비군 훈련을 받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러자 우리 회중 장로는 협회에 연락을 해보고 그때 다시 모임을 가져 보자고 했습니다. 며칠 후 순회 감독자가 협회 대표로 이 문제 때문에 우리 회중에 왔으며 장로들과 모임을 가진후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타협을 하여 이탈을 해놓고 왜 자신을 합리화합니까?”
이탈 죄로 제명을 시켜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저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조직책에 이탈에 관한 협회의 마련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여기 조직책에 보면 이탈이란 개인의 동의가 있어야 이탈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자 보십시오. 저는 분명히 이탈 안 했습니다. 저 개인의 양심을 존중해 주십시오."
그러자 순회 감독자는 저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탈 해놓고 안 했다며 억지를 부리면 안되지요."
또 저는 "이탈을 하고 안 하고는 제가 결정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자 순회 감독자는 "꼭 조직에 복귀를 원한다면 회개하시고 복귀 마련을 따르셔요."
저는 그래서 이렇게 말씀 드렸습니다, "죄도 없고 제명도 안 받았으며 이탈도 안 했는데 회개는 무슨 회개이며 복귀는 무슨 복귀입니까? 제가 조직에 들어가기 위하여 거짓 회개라도 할까요?"
그 감독자는 "거짓 회개는 안되지요 진심으로 회개를 해야 되지요." 그러자 저는 “내 양심으로 훈련받은 것 죄가 안되고 또 협회 방침에 중립은 개인 양심이라고 분명히 하지 않습니까? 훈련받은 것 죄가 되나요 분명히 말씀해 주셔요?" 그러나 그 감독자는 "훈련을 받은 것은 죄가 아니지요 이탈을 한 것을 가지고 논합니다."
그러자 제가 "제가 어떻게 이탈을 했습니까 그 행위를 말씀해 주십시오. "
그 감독자는 이젠 “협박”을 합니다, “자꾸 이런 식으로 말하면 배교자로 제명됩니다.”
이때 우리 회중 장로는 묵묵부답 이였습니다.
이렇게 수 시간 옥신각신 해도 모든 장로들이 일어서더니 자기들끼리만 수근 수근하면서 집에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회관 바닥에 앉자 지난 10년을 생각하면서 한없이 울었습니다.
1973년 침례를 받은후 학업을 중단하고 정규 파이오니아로 섬겼던 일들을 생각하였습니다.
3년이나 감옥간일 등을 생각하였습니다.
낙원을 바라보고 이 청춘을 바쳐 고생했건만 지금은 낙원은 고사하고 고작 이 꼴을 당하자고 이렇게 청춘을 허비했단 말인가?
전 세계 우리 형제들도 나처럼 언젠가 결국 이런 꼴을 당하고 만다는 사실을 알겠는가?
이 장면을 말로 형제들에게 알리면 "소설 같다. 거짓말이다. 협회가 그럴 리가 있는가?” 하면서 저를 믿지 않을것 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 전 세계 우리 증인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는지를 한탄했습니다.
저는 협회의 검은 얼굴을 이때 비로소 보았습니다.
그리고 집에 가면서도 계속 울었습니다.
그리고 목요일 봉사회 집회 때 배교자로 제명 발표 되었습니다.
저의 억울한 사정을 형제들에게 알리려고 해도 이미 인사 및 대화 거부로 차단시킨 뒤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증인 5명이 동반 이탈했습니다.)
저의 아내는 "협회는 여호와의 증인 조직이 참 조직이고 이 종교를 믿어야 낙원 간다고 말하면서 왜 억지로 제명을 시키려고 하는지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비난했습니다.
그 이후 저는 회중에서 계속 여호와를 섬길 수 있는 기회가 협회에 의하여 파괴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저의 제명 처분에 불만을 품었다고 하면서 반대를 한 저의 회중 장로 최 백용 형제도 같이 배교자로 제명 처분 당하였습니다.
형제님들, 최형님의 제명 처분을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이 분의 반발이 두려운 협회는 사법 모임도 없이 회중에서 공개 발표도 없이 협회 대표 오순규 장로가 형제들 개개인에게 전화를 하여 제명을 알리고 절대로 대화를 해서는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천지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이분은 1980년도 비상계엄이 있을때에 파수대가 폐간될 위협이 생길 때 당숙인 최규하 대통령을 찾아가 복간되도록 힘을 쓴 분입니다. 이 분이 지금 "여호와의 증인 이렇다"라는 책을 써 협회에 대하여 정보가 어두운 형제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있고 지금까지 약 500명 정도 증인들을 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월이 몇 년 흘렀습니다.
1985년 7월 달쯤 한국일보에 여호와의 증인에게 알리는 "워치타워 비밀"이라는 광고가 실렸고 이 책자를 무료로 준다고 했습니다.
저는 즉시 신청하여 이 책자를 보고 다른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저는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워치타워가 거짓 조직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대충 느낌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읽어보고 탄복 했습니다.
협회의 거짓을 아주 소상히 정확히 적고 있었습니다:
144000명과 적은 무리에 대하여
1914년 과 예수님 임재에 대하여
종말교리에 대하여
제명처분 제도에 대하여
병역 문제에 대하여
워치타워와 통치체에 대하여
저는 이 글로 확실히 워치타워는 사단의 조직임을 확신했고 현재 가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증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성경에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는 유형임을 확실히 알게되었습니다.
협회의 잘못된 성경 해석 체계로 인하여 증인들이 스스로 영적 감옥에 구속되었고 구원받기 위하여 평생 고통스럽게 살게된 것입니다.
결국은 낙원도 못 가고 저처럼 제명되거나 거짓을 알고 이탈하게 되는데 말입니다.
이 책은 정확한 성경을 근거로 그리고 협회의 출판물을 근거로 아주 확실하게 워치타워의 거짓 가르침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저는 즉시 최 백용 형제 사무실에 찾아가 이 책자를 보여 주니까 놀라워 하시면서,
“나도 협회가 이상하다는 것은 알아도 확실히 워치타워가 사단의 조직이라는 것은 몰랐습니다.
이 책으로 워치타워에 속고 있는 불쌍한 우리 증인들을 구해 냅시다. 때가 시급합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쓴 신철수 형제를 서울로 와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서울에 온 신 형제와 서로 만나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신 형제 제명은 너무나 어이가 없었습니다.
1982년 5월9일 파이오니아를 하고 있는 신 형제는 전도 봉사가 별로 효과가 없다는 점을 알고, "효과적인 전도 봉사" 라는 주제 아래 원고지 200쪽의 논문을 써 협회에 보냈는데 이 일로 배교자 제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워치타워 비밀 서론에 있음).
그리고 서울 신당동에 최 백용 장로 사무실에 저와 또 이 글을 읽고 탈퇴한 노량진 회중 최 기식 형제 등 그리고 몇 명의 형제 등 약 10여명이 모여 우리 증인들을 구해 내는 형제 전도 회를 조직하였습니다.
우리는 “워치타워 비밀의 책”을 서울 순회 대회 회관 앞에서 전하였는데 내막도 모르는 증인들이 자기를 구해주는 책인줄도 모르고 오히려 자기들을 해치는 책 인줄 알고 책을 빼앗는 바람에 몇 부 전하지도 못하였습니다.
그 이후 저희들은 옛 증인들과 피해 가족 등 1381명의 서명을 받아 워치타워 협회는 성경을 교묘히 해석하여 낙원이라는 환상을 심어주면서 인간을 철저히 파괴하는 종교 범죄 조직임을
서울 지방검찰청에 고발을 하였습니다 (조선일보 1986년7월17일).
수사를 맡은 검찰청에서는 "워치타워가 병역 거부하라고 뒤에서 교사하여 범죄를 저지른 점 세상이 다 알지만 이는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 없이 워치타워 임원을 구속수사 할 수 없다" 기에 사건은 이내 종결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호와의 증인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참으로 낙원 가는데 제가 훼방 놓으면 저는 천벌을 받아야 됩니다.
워치타워가 인도하는 길은 확실히 낙원 가는 길이 아님을 저는 너무나 분명히 성경 적으로 알고 있기에 안타까운 심정에서 이 글을 쓰는 것입니다.
협회의 거짓 낙원 길에 속아 전 세계적으로 약 1000만 명이나 인생을 망치고 닭 쫓은 개 지붕 처다 보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에게는 이 일이 결코 남의 일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는 배후에 사단 마귀가 미혹하는 영으로 인류를 속이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이후 옛 증인을 많이 만났는데 한결같이 여호와의 증인조직에서 빠져나오게 해주신
하나님께 너무 너무 감사하고 있으며 또한 조직안에 있는 증인을 불쌍히 여기고 있었습니다.
물론 협회의 거짓을 알려면 성령의 인도나 전문적 성경 지식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저도 압니다.
이는 협회의 거짓은 쉽게 알 수 없도록 교묘히 포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협회가 확실히 속보이는 소리를 해도 증인들이 눈치를 못 채는 것은 워낙 심하게 증인들이 세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낙원이 있어도 그 낙원은 마귀 조직인 워치타워를 따르는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주려고
하나님이 준비한 것이 아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아마 이 글을 읽은 형제들은 아마 많은 질문과 의문 속에서 갈등이 클 것입니다.
계속 알아보시고 “워치타워 비밀”을 읽어 보셔요.
하나님은 이렇게 여러분에게 호소 하십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워치타워] 나와 그의 [협회]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재앙을 함께 받지 말라.”
워치타워는1935년 병역 거부 교리와 수혈 거부 교리를 만들어 의식화 교육을 시켰고 이에 수 많은 신도가 죽거나 고통의 함정으로 밀어 넣었으며 거짓이 탄로 날까봐 배교자로 제명시켰고,
대화 단절을 시켜 안에 있는 증인이 협회의 내막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도록 차단하였기에 지난 120년 동안 국제적으로 사단 마귀가 종교 사기를 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미 1914년에 거짓이 탄로 난 워치타워에 충성하지 마시고 성경과 하나님께 충성 하시여
꼭 알아보시고 진리가 아니면 과감히 그곳에서 빠져 나오십시오.
그 이후 조금은 방황하게 됩니다.
그리고 계속 기도와 성경으로 진리를 찾도록 성령의 인도를 받으십시오.
저는 그 이후 확실히 낙원 가는 길을 알고 지금은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여호와의 증인 이탈서 (퍼옴)
본인은 더 이상 '여호와의 증인'으로 더는 인정되거나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소위 증인 2세로서, '진리'는 '언제든, 어디서든 불변'이며,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옳아야 하고, 하나라도 어긋나면 열까지 다 무너진다'고 배웠습니다. 만 OO세에 침례 받기로 결심했는데, 이 '선택'은 당시의 제 사고로써 '여호와의 증인'의 가르침을 '진리'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약 OO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논리적인 순서로… 말로 가르침받은 것들이 확실'(누가 1:3, 4)한지 검토하는 데 관심이 많으며,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협회' 역시 '이미 배운 것들을 계속 확인하여 자신의 확실한 것으로 만들라'는 합리적인 권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 조언을 따라 개인연구를 하던 중 최근 발견한 것들은, 저로 하여금 '이 조직이 여호와의 인도를 받는 신권조직인가' 라는 질문에 확답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지난 약 5개월간, 저는 혼란스러웠던 문제들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과정에는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포함됩니다. 출판물에 근거한 자료들과 그에 대한 제 질문들을 정리해 보여드렸는데, 아쉽게도 명확한 답변을 주시는 분이 없었습니다. 한 장로 형제의 말씀처럼, 조직의 입장과 변론은 이미 출판물에 서술되어 있으므로, 제가 출판물을 조사하고도 이해할 수 없는 문제라면 -협회에 서신을 보내든, 동료들에게 물어보든- 더 이상 받을 수 있는 도움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사실, 제 질문들을 대하는 동료들의 반응이 저를 더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조직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절대적인 순종'으로 이어지는 '여호와의 증인'인데, '우리가 언제 교리들에 특별한 의미를 두었느냐'는 듯 너무도 쉽게 인식을 바꾸는 모습... 많이 놀랐습니다. 그 만큼 조직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이유가 바로, 협회의 가르침은 '적은 무리'가 여호와의 인도를 받아 전하는 '절대 진리'이기 때문 아닙니까? 교리의 모순에 대하여, '믿음을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는 식의 태도는 저를 무척 실망시켰습니다.
결국, 저는 협회의 가르침에 모순이 있다고 결론 지었습니다. 추측, 비약, 관련 없는 성구의 연계, 나아가 증인의 역사와 성서의 예언을 억지로 일치시키는 자의적 해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저 역시 조직의 논리에 길들여져, 모든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여왔습니다. 여러분도 그러하듯, 참 종교의 여부는 진리의 시비 여부입니다. 성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교파가 나뉘며, 교파에 따라 참 종교와 거짓 종교로 판단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교리가 과거에도 바뀌었으며, 현재도 바뀌고 있고, 미래에도 바뀔 수 있음을-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임을- 당연히 생각합니다. 진리는 '점점 빛처럼'(잠 4:18) 밝아지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오히려 저를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현재의 교리들도 충분히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진리의 빛이 아직도 밝아지는 중이라면-오류가 어느 정도 있는 것이 정상이라면- 세상의 수 많은 종교들의 참/거짓을 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류의 많고 적음으로 '참 종교'임을 확신하는 것,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이에 자진 탈퇴합니다.
저는 여호와를 부인하는 게 아닙니다. ''여호와의 증인' 조직이 여호와의 승인을 받았으며, 그분께 다가갈 수 있는 지상의 유일한 통로임'을 부인합니다. 여호와가 아니라 여호와의 증인 조직을 떠납니다.
물론, 제가 정답을 찾았다는 것도 아닙니다. 적어도 과거의 제 선택이 오답이었음을 가려냈다는 것입니다. 협회의 가르침이 '세상'에 대해 심어놓은 두려움 역시 남아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가 아니면, 어디로 갈 수 있겠는가'라는 식의 사고방식으로 이 조직에 머무를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제가 '여호와의 증인'을 참 종교로 믿으면서 크고 작은 대가를 치를 때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분명, 조직을 이탈하면서도 용기-어쩌면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그렇게 소중했던 이 조직이 '참 종교'라고 하기엔 너무나 많은 오류가 있음을 알았을 때... 참으로 슬펐으며, 심지어 조직에 대한 배신감마저 들었습니다.
지금까지의 OO년 일생을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살아왔습니다. 인맥관계 역시 이 조직 안에서 형성된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또한 그것을 축복으로 여겼습니다. 제가 조직을 이탈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압니다. 하지만 저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과의 관계를 끊고 싶지 않습니다...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이탈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조직에서 훈련받은 제 양심 때문입니다. 지금껏 OO년 가까이 해온 봉사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모순임을 알게 된 협회의 가르침들을 더 이상 전할 수 없습니다. '이방인'들보다 더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에게는 오죽하겠습니까. 의견을 나누고 싶어도 그러한 제 언행이 오해를 살까 두려우며, 그러므로 불편한 이 상황이 너무 괴롭습니다. 불명예스럽게 제명되고 싶지 않습니다. 이에 자진 탈퇴합니다.
그동안 저에게 많은 사랑과 관심을 베풀어준 동료들, 또한 저를 돕기 위해 애쓰신 장로회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부디 제 소중한 형제자매들의 희망이 되는 협회의 가르침들... 다시 한 번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이 이탈서는 '여호와의 증인' 한국 지부 사무실에도 제출합니다.
2011년 8월 28일
P.S. 장로회 앞에서 '이탈'을 최종적으로 확정한 날은
8월 28일(이탈서에 적힌)이 아닌, 9월 9일(협회의 답신을 받고)입니다.
P.S.2. 저에 대한 믿음을 호소하는 건 아니지만...
저를 조금 아신다면, '과연 왜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됐는지' 궁금할까요?
제 의문점들은 조직의 출판물에 근거한 것입니다.
저도 한국 생활 중에는 이런 구체적인 개인연구를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집회 준비로도 바빴는걸요.
물론, 계산해야 하는 문제도 있고, 배경 지식이 필요한 문제도 있습니다.
어렵지만, 그래도 낭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여호와께 헌신했던 마음으로 살필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과 사랑을 주고 받던 사람 입니다.
이렇게 밖에 달리 인사할 방법도, 변명할 기회도 없는 저를 이해해주세요.
신체적으로,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죄 짓지 않았음을 밝혀둡니다.
오로지 교리적 모순으로 이탈합니다.
제 주관적인 얘기를 길게 늘어놓는다면, 조직의 가르침에 대해 객관적으로 논할 수 있는 분위기가 깨진다는 걸 압니다. 길게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중국에서 봉사하면서, 사람들을 더 잘 가르치기 위해 했던 연구들이 제가 모르던 것들, 알아차리지 못한 것들, 지나치고 있던 것들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처음엔 정말 혼란스러웠습니다. 형제자매 모두들 이 점들을 알고도 이 조직에 머물러 있는 것인지 당황스러웠구요. 그래도 조직에 고착하면 언젠간 해답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수 많은 출판물을 참고하고 장로 형제들께 도움을 구하고 협회의 답변까지 받았으나,
해결은 커녕, 더욱 미궁속으로 빠지고 결국 이렇게 결론이 났습니다.
제가 겪은 혼란은 이 조직이 오답이라는 결과는 얻었으나 다른 답을 찾지 못한 까닭으로
여러분에게도 혼란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 함부로 말할 수도 없고, 제대로 말할 수도 없기에, 이렇게 떠나는 저를 다시 한번 이해해주세요.
저는 저희 어머니를 통해 이 조직을 '참 종교'라고 믿게 된 소위 '증인 2세'입니다.
물론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이 호칭을 굉장히 싫어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에 모태 신앙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개개인이 '진리'라고 깨닫고, 자신의 의지로 선택해야만 하는 길이기 때문이죠.
저 역시 제 인생을 좌우하는 '종교'라는 중요한 문제에서-사고의 틀이 되는 문제에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 엄청 노력했습니다. 꾸준히 개인연구 해왔고 또 그러한 개인연구를 통해 이 종교를 확신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동안 해 온 개인연구들의 많은 부분은 잔가지였을 뿐, '참 종교'라고 확신하는 데 필요한- '여호와의 증인'을 다른 종교들과 분리시켜주는 기본/중심 교리에 대한- 개인연구는 부족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엔 왜 이렇게 생각해보지 못했을까요...
간단히 말하면, 조직에 대한 무한하고도 절대적인 신뢰때문입니다. 믿고 싶었습니다. 이 세상엔 분명 '절대 진리'가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이미 제가 사랑하게 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조직을 떠나면, 이런 것들을 누릴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참 많이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고 그것들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면서 그동안 맞다고 생각해왔던 다른 것들도 재검토 할 필요를 느낍니다.
저는 잘난 사람도 아니고, 못난 사람도 아닙니다. 그저 제 인생을 위해-'여호와'께서 원하신다면-용기 있는 사람이고 싶을 뿐입니다. '과거의 선택-만 OO세의 사고로 선택하고, OO세 지금껏 해온 판단-을 유지하지 않기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착오였음'을 인정하고, 다음을 향해 나아가기로 했습니다.
'답을 내놓을 수 없는 문제에 대하여-여러분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는 문제를-그래도 언급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도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나, '오답을 손에서 놓지 않으면, 정답을 쥘 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확신하냐구요? 사탄의 세상이 두렵지 않냐구요? 자신을 믿냐구요?
제가 얼마나 어려운 결정을 한 건지... 짐작이 되나요?
겸손이 뭘까요? '지금은 이해가 안 되지만, 언젠간 되겠지.'라는 생각만이 겸손일까요?
그동안 만나온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이 진리다.'라고 말해온 '절대 진리'가 오류임을 인정하는 것은 과연 쉬운 일일까요? 이렇게 얘기하는 제가 교만인걸까요?
나이를 먹고 경험을 쌓고 사고도 달라지면서 분명 저에게도 변화는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바라는 세상, 제가 원하는 인생, 제가 꿈꾸는 저는 그대로 'OOO'입니다 :)
저를 아는 분들은 알죠. 제가 적극적인 사람이라는 걸. 이 종교가 정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열심히 할 수 있었습니다. 답이 아니라고 결론난 지금 역시 적극적으로! 다시 힘차게! 나아가려고 하는 거구요.
한 번 했던 선택을 번복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 선택이 이미 많은 것들을 좌우 했다면,
번복이라는 것은 정말 어렵고도 '아까운' 것이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조직을 통한' 여호와에 대한 헌신, 이 중대사를 번복한다는 것은 지나간 OO년이라는 세월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합니다.
저는 여호와에 대한 헌신을 져버린 것이 아니라, 조직에 대한 헌신을 취소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 경험으로 비추어 보아도, '조직을 떠나면, 여호와를 버리는 것'이 되는 관념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은 것 같네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기도 합니다.
복잡한 계산 문제도 있고, 방대한 자료수집 문제도 있습니다.
어느 장로형제께서는, 제 말씀을 듣고는, 제 '종교관부터 틀렸다고, 조직은 원래 완벽할 수 없는 것이라고, 진리는 하느님의 말씀-성서고, 조직의 가르침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종교, 진리'의 관념이 제 잣대와 안 맞으니까 그러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침례 전에 그렇게 안 배웠냐고 사회자가 안 가르쳐줬냐'고 되묻기까지 하셨는데, 여러분도 정말 '종교, 진리'에 대한 개념이 그러한 건지 궁금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제 문제에는 '종교, 진리'에 대한 개인 취향? 기준?의 문제도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번을 계기로 '조직의 가르침을 자신의 것으로 온전하게' 만들 수도 있고, 다시 한 번 검토할 필요성을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제 변명을 계기로 한 글들이, 어떤 방향이든간에 여러분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P.S. 제 핸드폰 전화번호부에 있는 분들께만 짧게 인사드렸습니다.
미처 인사 못 드린 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정신이 없어 일일히 답장 못 한 것, 통화 못 받은 것, 이해해주세요...^^
이 편지로 여호와의 증인으로부터의 탈퇴를 선언합니다.
희망을 전하며
원주서부회중 여러분에게,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은 제 인생에 매우 중요하고도 심각한 것입니다. 현재까지의 제 인생은 증인이 아닌 삶보다 증인으로서의 삶이 더 길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러하듯이 저 역시 증인으로 살아오면서 증인이 아닌 인생을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그래서일지 다른 삶을 선택해서 살아온 지난 6년간은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는 제 인생의 치열했던 전환점을 설명하는 것이기에 매우 길 수밖에 없지만, 여러분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서 최대한 간결하게 쓰고자 합니다.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저의 마음을 부디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교육을 받아 중립을 지키고 회중의 장로로 일하기까지 오랫동안 성서와 워치타워 출판물을 읽어 왔습니다. 제가 갖고 있던 믿음이 진리라고 생각했으며 지상에서 유일한 참 종교에 속했다고 확신했기에 젊음을 바쳤고 세속적 야망과 기회를 기꺼이 포기했습니다. 더불어 이 조직에서 만난 선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환경이 더 없이 좋았고 장래에 신세계의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모습을 그려 왔습니다.
하지만,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사물을 좀 더 종합적이고 분석적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급기야 제가 믿고 있던 믿음 중 많은 것들이 성경전체와 조화롭지 않고 오히려 심각한 모순이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차분하게 심층적인 연구를 시작하였고 선입견과 타인의 영향을 최대한 배제하면서도 스스로 국내외 학술자료와 협회출판물을 비교분석하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상상할 수 있듯이) 이 과정은 제 인생을 송두리 채 바꿔놓는 매우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제발 내가 믿고 있는 증인의 삶이 진리이기를, (발견되는) 반대논리들이 거짓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구에 임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제 삶이 과연 제 스스로 선택한 삶이었는가를 처절하게 되 돌아 보는 기회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참 하느님과 기름부음받은 지상의 남은 자 반열을 따르고 있다고 확신했던 저였지만 연속되는 재발견과 반전속에서 정신이 아득해 질 지경이었습니다.
약 2년간 연구와 번뇌를 거듭하면서 급기야 회중에서 장로로 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점차 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회중에서 가르친다는 것은 저의 양심에 배치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쉽사리 결론을 내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장로를 사임하고도 전도인으로 1년을 더 활동하면서 좀 더 많이 검증하고 토론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형제자매들은 반대논리나 교리적 모순에 대해 논의하려는 저를 사탄의 영을 받았다거나 배교적 사상자라고 평가절하하고 비난하였습니다. 또한 저를 교만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벧엘에 똑똑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너 만한 판단력이 없겠느냐는 말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지하게 성서적으로 저를 설득하는 능력을 보여준 사람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고도 애석한 일입니다. 그분들은 그저 [숲을 보고 가야한다]든지 [언젠가 조정될 것이다]라는 말로 구체적 토론을 회피하였습니다. 제기되어 있는 종교적 모순과 현실을 회피하려는 것은 비성서적이며 참 그리스도인다운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형제들은 통치체의 지침(출판물)과 하느님의 명령을 동일시할 정도로 복종하면서도 출판물의 모순과 오류를 지적당할 때는 인간들이 쓴 것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어떤 (증인들이 말하는 거짓종교세계제국인) 종교조직이 스스로의 모순을 변명하면서 인간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라든가 때가 되면 하느님이 조정해 주실 거라고 말한다면 증인들 자신은 이를 용인할 수 있을까요. 다른 종교에게 들이대는 엄격한 잣대를 정작 자신들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면, 이는 공정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연구가 거듭될수록, 내가 행하고 있던 그리스도인 행실과 공개적 선포의 본질이 하느님과의 개인적 관계를 견고히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바리새인들과 같이 인간이 정한 세부규칙을 따르는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이 생겨났습니다. 방대한 종교사를 공부하면서 완전하지 않은 인간종교조직이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대리한다고 주장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앗아갔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무활동 상태로 접어든 이후 약간의 위험(?) 을 무릅쓰고 제가 깨닫고 느낀 바에 대해 동료들에게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정어린 저의 진심과는 달리 이것은 고발로 이어졌고 회중내에 파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회중에서는 급기야 이탈처분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저의 생각을 충분히 모르는 가족과 벗들에게 상처를 줄 것을 우려하여 사법처리는 유보해 줄 것을 부탁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종교에 대한생각과 논리가 확립된 저로서는 사법처분은 두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영문을 모르는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제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이즈음 저의 사상적 고뇌를 외면한 채 저의 사생활까지 들먹이며 도덕적인 문제로 소문을 지어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의 이탈의 원인이 사상적 문제가 아니라 다른 데 있다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직을 떠났기 때문에 분명히 불행해 질 것이라고 저주의 말까지 하면서 차갑게 저를 내치는 분도 있었습니다. 참으로 이런 상황은 중세 마녀사냥과 북한의 인민총화를 연상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회중의 이탈발표를 계기로 영문도 모르고 마음아파하는 친족들과 지인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저의 입장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각자의 선택한 삶이 있다는 것은 존중하지만, 모순을 회피하고 진실을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은 더욱 불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아직도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는 형제자매들은 저를 피하기도 하고 어색하게 인사를 하기도 합니다. 그럴때면 함께 많은 추억을 공유했던 여러분에게 달려가 당장이라도 반가움을 나누고 싶습니다. 하지만, 확고한 자기주관이 없는 듯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어색하고도 두렵게 떨리는 여러분의 눈길을 보면 이런 감정을 포기해야 합니다. 진리를 가지고 있다면 도대체 두려워 할 것이 무엇이며 저를 향해 어떤 설득의 말이라도 해야 할 텐데, 여러분은 그런 용기가 없으십니다. 여러분은 저의 얘기 한마디 들어보지도 않은 채 그저 사탄주의자나 배교자로 내모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혹시 조직의 마련이 두려워 저를 멀리하시는 겁니까.
어떤 분들은 (그동안 출판물이 암시하였듯이) 저를 차갑게 대하면 제가 다시 조직으로 돌아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을 강압적으로 돌리려는 것은 일차원적인 것이며 성서전체의 특성과도 배치됩니다. 여러분의 (이방인)가족이 여러분을 호되게 반대하고 따돌린다고 여러분이 스스로 신념을 포기하는 일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언제나 그렇듯 사람의 마음을 돌리는 것은 집단적 왕따나 처벌이 아닌 진정성있는 대화와 설득입니다. 성서에는 일부 범죄자들에 대해 인사도 하지말라고 하는 성구가 있는 반면 용서하고 설득하라는 성구도 많지 않습니까. 인간조직에 반한다고 성령을 거스른다거나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다는 등의 지침은 조직논리를 앞세운 인간들의 주장입니다. 집단왕따와 절교처벌은 하느님의 권위를 무단으로 차용했던 카톨릭의 파문제도나 공산주의의 인민재판과 같은 것입니다. 정통성이 결여된 집단에서 사용하던 구시대적 인권탄압이지요. 성서전체의 그리스도 사상이 이런 제도를 지지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성서적으로 배교란 특정집단의 가르침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 요한 둘째 9,10절에 나오듯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반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무엇인가에 집중하면서 성서를 연구하였습니다. 통치체의 해설이 성서와 부합하는가를 살피는 일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한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성서를 능가하는 가르침은 없다는 사실에 동의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통치체의 해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상충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성서 마태 24장 36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임재시기를 하느님만 안다고 하였습니다.(이 성구가 가리키는 것은 큰 환난이 아니라 임재입니다. 전후문맥을 잘 살펴보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치체는 자신들이 이것을 1914년 이전에 예지하고 인지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가 1914년 가을이라고까지 구체적으로 지목하였습니다. 다니엘서와 예레미야서의 일부성구를 대입하여 연대계산식까지 발표하였습니다. 통치체는 오랜 기간동안 이 연대계산과 그리스도 임재를 연계하여 [다가오는 신세계]에 대한 열망을 증인들에게 심어줌으로써 개인의 소중한 것(재능, 학업, 진로, 직업, 사업)들을 기꺼이 희생토록 하였습니다. 증인들 중 많은 이들은 이런 장래희망이 없었다면 다른 삶을 살기 원하였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는 별도로 인간본연의 욕망에 관한 문제이며 현실적인 선택일 것입니다.
그러나 충격적이게도 저는 이 장래희망에 대한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는 1914년과 기원전 607년 관련 연대교리가 성서적으로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런 오류 때문에 출판물상에도 그간 연대에 대한 많은 번복이 있었던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1919년 이래 그리스도에 의해 선택되었다고 말하는 [충실하고 지혜로운 종]의 신분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성서의 연대와 관련된 성구를 종합하여 살펴보면, 기원전 607년 고대 예루살렘 멸망이라는 연대는 논리적으로 검증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그 어떤 백과사전을 보아도 기원전 607년 예루살렘 멸망이라는 고고학적 증거는 전무합니다. 그런데도 하느님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그 임재시기를 통치체는 계산했다고 했고 (예루살렘 멸망이 기원전 587년이라는)압도적인 고고학적 증거와 배치되는 성구기록은 무시하였습니다. 통치체는 이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출판물을 통해 (최근까지) 여러 기사를 썼지만, 출판물에서 누락시킨 (통치체에 불리한) 고고학 자료들과 성서적 논리가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계신지요. 예루살렘 황폐70년과 관련된 성구들 (예레미야,다니엘,역대기)이 단어해석과 번역에 따라 상이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은 문자적 70년 황폐기간이 성서적으로 온전히 입증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오히려 고고학과 일치하게 기원전 587년이라는 연대를 고대 예루살렘 멸망으로 받아 들일 때 조화로운 성서해석이 가능하지요. (물론 이 부분을 연구하는 것은 매우 심층적이고 고도의 집중력을 요합니다)
놀랍게도, (그동안의 우리의 이해와는 달리) 과거 성경연구생들은 1914년을 그리스도의 임재로 전혀 예지하거나 인지하지 못했으며 1940년대가 되서야 임재교리를 발표하였습니다(천년왕국 195p 55항). 이것은 제 사상을 바꿔놓은 결정적인 부분으로, 마태 25장에 나오는 슬기로운 처녀반열의 자격을 논할 때 출판물에서 스스로 강조한 부분이 오히려 오류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스도가 지상의 종을 검사하였다는 1919년 시점에는 (슬기로운 종 반열이라는) 성경연구생 그룹이 (지금의 증인들 관점에서 볼 때) 거짓 교리를 상당 부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들 역시 거짓종교제국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인도를 받은)영적 양식이 아닌 사람의 것을 배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슬기로운 처녀반열은 1919년 시점에도 왜 주의 임재를 인지하지 못했을까요. 그간 [돋는 햇볕]논리로 교리를 수정하며 여러 번 마지막 때의 기한을 늘려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통치체의 주장에 반하는 자료를 아예 보지도 못하게 하고 논의조차 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증인들은 출판물의 내용만을 가지고 통치체의 가르침을 믿으려 하는 것일까요. 영의 인도를 받았다는 영적양식은 왜 (진리가 아니라는 증거인듯) 수시로 변경되고 번복되는 것일까요.
이것은 여호와의 증인이 과연 하느님의 인도를 받는 진리의 조직인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이런 의문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증인조직의 역사를 다시 살펴보고 출판물간의 상호부조화, 교리의 원칙없는 변경, 예언에 관한 시대별 말 바꿈, 수혈교리의 변경 등으로 인해 희생된 소중한 목숨이나 개인의 삶들을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증인들에게는 성경에 버금가는 권위를 갖게 된 통치체의 지침 한 두가지가 수 백만명의 인생을 좌우하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 온 것입니다. 가변적인 통치체의 해설과 지침에 목숨을 걸고 충성하는 무리들이 있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섣부른 결론이나 합리화를 배제하고 객관적이고 학술적인 연구를 거듭하였지만, 모순은 더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선입견을 배제하고 공정성을 유지하는 것이 지성인의 자세라고 생각했으며 성서와 논리를 최종의 잣대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발견된 모순에 대한 체계적인 답을 해주는 형제들이나 출판물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유능한 순회감독자와 벧엘 장로들도 저의 질문을 일축하고 대답을 회피하였지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교리적 모순에 더해 워치타워 협회가 행해온 은밀하게 정치세력들과 결탁하고 타협한 일들을 발견하면서 좌절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미국의 워치타워협회는 10년간의 유엔홍보부가입, UNNGO활동, 월킬농장 폐기물 대규모 불법매립 , OSCE 회의참석 등을 통해 통치체가 표방하는 신념과는 다른 행동을 해 왔습니다. 게다가 이런 보고들이 반대자들의 중상이라고 일축하면서 사건을 부인하고 은폐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들은 객관적 자료에 의해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물론 사건의 폭로는 반대자들에 의해 행해졌지만, 사건 자체는 진실이었으며 역사로 남아 있습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조직을 따르고 있는 회중성원들만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 꼭 조사해 보십시오. 한쪽의 주장만을 읽고 무언가를 사실화하는 것처럼 무모한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양쪽의 주장을 공평하게 조사하고 계십니까. 인터넷을 통해 일반인들도 사실확인과 증거수집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정보통신시대에 인터넷을 멀리하라는 출판물의 경고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역사적으로 많은 신흥종교들이 그리스도 임재와 관련하여 연대계산을 하여 (다양한 형태의 말세론으로 포장된) 장래희망을 앞세웠고 청렴과 진실을 자랑해 왔습니다. 그들은 조직의 논리에 맞추어 특정성경성구들을 해석하는 반면 반대되는 성구들은 협의(狹義) 적용하거나 합리화하는 식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해 왔습니다. 결국 그들의 참 모습은 말 바꾸기와 모순이었으며 종교를 통한 비지니스가 주 목적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조직은 도덕적으로 조직운영의 측면에서도 장점이 많은 종교조직입니다. 하지만, (성서적으로 볼 때) 장점이 많고 적음에 따라 참 종교의 신분이 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방주와 같은 구원의 통로를 자임하고 하느님이 인도한다는 조직이라면 (스스로의 지침에 반하는 정치세력과의 타협과 같은) 내부적 모순이나 위선, 폐쇄성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게다가 이런 조직이 장래에 대해 그릇된 예언을 하고 교리번복을 하면서 반대자료에 대한 열람이나 토론자체를 금지한다면 조직의 정체성 자체를 의심을 해 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성서는 끊임없이 자신의 믿음에 대해 의심하고 조사할 것을 권합니다.(사도17:11)세상에는 그릇 인도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디모데 둘째 3: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사람들은 더욱더 악해져서, 그릇 인도하기도 하고 그릇 인도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끊임없이 조사하고 검증해야 합니다. 참 종교는 자기합리화나 자화자찬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인생을 건 종교였다면 사람은 누구나 그 종교에 대해 합리화하려는 유혹에 굴복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습니다. 저 역시 조직을 나오면서 제가 알게 된 사실들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조사하였습니다. 가능한 모든 자료를 비교분석하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베레아 사람들과 같은 상당한 주의력과 탐구력이 요구됩니다. 여러분은 그런 용기가 있으십니까 (사도 17:10, 11; 시 119:33-36)
최근 들어 파수대에서는 [배교자]나 [제명자]와의 교제금지를 가일층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간음과 같은 범죄자들과의 교제보다도 저와 같이 사상적 이탈자들에 대한 경고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이런 파수대의 강조기사는 그만큼 사상적으로 이탈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과 이들의 논리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방증(傍證)하고 있습니다. 사상적 이탈자들에 대한 강력한 교제금지 또한 접촉할 경우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것임을 자인하는 것이죠.
분명히 인터넷이나 도서로 흘러 다니는 반대자료 중 조잡하고 허무맹랑한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성서전체로 대조해 보건대, 진지한 연구자에게도 설득력 있는 자료들이 많으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맹목적 종교관념을 깨는데 일조하였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미국 등 서구에서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많은 사상적 반론자들이 워치타워협회에 대해 정보공개와 오류와 모순에 대한 대답을 요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협회의 묵묵부답과 무시로 일관하는 역사가 반복되고 있고 한국에서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언젠가 아니 여러분의 생이 끝나기 전 어느 순간엔가는 제가 언급한 [여호와의 증인의 오류와 교리적 모순]이 도대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에 대해 한번쯤은 궁금증이 생기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올인하여 신세계와 영원한 생명을 바라지만, 그 순간이 여러분의 생애내에 오지 않는다면, 단 한번만이라도 이 편지를 떠올리기를 바랍니다. 단 몇 시간만의 (객관적이고 마음을 연) 연구만으로도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여러분은 혹여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 하더라도 지금의 삶이나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더 낫다라고 결론 내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저는 의아합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인생이란 다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이 소중한 인생의 순간순간을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지 못하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축복을 받으려고 희생을 하면서 지난 인생을 살아 왔는데...그 결과가 만약, 만에 하나, 잘못된 선택이었다면, 인간조직의 지침에 복종한 것에 불과하다면, 어찌 하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삶을 또 다시 내 자식에게 물려주고 세상을 떠나야 한다면, ...아~!.
이런 어마어마한 선택을 다시 한번 재고해보시라고 저는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사해 보십시오. 다시 조사해 보십시오. 저는 여러분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게 간곡히 간곡히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진실을 외면하지 마시고 맞닥뜨리기 바랍니다. 우리네 삶은 소중합니다.
봄이 오고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PS : 저는 이 편지로 여호와의 증인으로부터의 탈퇴를 선언합니다. (오랜 기간의 연구조사 결과) 여호와의 증인조직은 신권조직으로서의 성서적 권위가 없기 때문에 저를 그 어떤 죄목으로도 심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느님과 저와의 관계는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중보이며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최종 판단은 여호와에게 달려 있습니다. 제가 이 즈음에 여러분과 절교를 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여러분과의 이별을 고하지 않겠습니다. 여전히 저는 여러분을 사랑할 것이며 거리에서 만날 때 반갑게 인사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저에게 어떤 연락이나 도움을 청하면 기꺼이 달려 갈 것입니다. 제가 발견하고 연구한 방대한 자료들을 정리하고 집필하는 일은 제 여생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원하신다면 언제든 자료를 제공하거나 토론할 용의가 있습니다.
저는 다음 성구가 진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심판은 자비를 행하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무자비합니다. 그러나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 (야고보 2:13, 새번역
이 글은 여호와의 증인에서 활동적인 한 엄마가 48년간 봉사후 조직을 떠난 자신의 경험을 적은 글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나의 삶 그리고 내가 떠난 이유
사람이란 여러가지 이유로 모임에 들어오거나 떠나곤 한다. 하지만 내 경우, 이 그룹(=증인 에서 떠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었는데 이 외에 다른 믿음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남편과 나는 소위 3세대 증인이었고, 양 가족 모두는 증인으로 자랐다. 하지만 지난 4년 사이, 우리 가족 모두는 갑작스레 증인을 떠나게 되었다.
나는 증인시절 많은 것을 배웠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도 개인적 우정을 나누는 법을 배우게 되었고, 개성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법도 배웠다. 역경 가운데서 용기를 배우게 되었고 여러 다양한 환경에서 말하는 법(대처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나는 매우 활동으로 호별방문에 참여 하여, 평균 월 25-30시간을 바쳤고 48년간 중단 없이 정규적으로 그렇게 하였다. 나는 성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노력에 헌신적이었다.
나는 일반 사람들 또한 사랑하는 법을 배웠으며 그들을 후대하는 면에 매우 노련하였다. 나는 집에서 파티를 열고 다양한 사회활동을 조직하고 그런 일을 능숙히 하는 편이었다. 전문적 결혼 코디네이터보다 더 근사하게 집에서 결혼을 주선하기도 하였다. 나는 매우 재밌는 인생을 누렸고 언제나 그렇게 되도록 계획하였다. 하지만 인생에 그러한 근사한 무엇을 누리기 위하여 증인을 그만두어야할지 모른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 자신이 꽤 순종적인 사람인 줄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조금 설명해 보고자 한다. 오랜 기간 나를 짓눌러온 고민이 있었는데 그것은, 많은 증인들은 대체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보다 더 성공적인 증인으로 바라보아진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과거나 현재까지도 증인들은 대학에 가는 것이나, 집을 사는 것, 결혼을 하는 것, 아이를 갖는 것, 가족을 방문하는 것 또는 사회봉사 활동을 하는 것을 썩 좋게 보지 않았다. 내 경우 친구라고 불리는 사람, 친척들 또한 대부분 증인들이었기에 나는 그것이 전부인 삶을 산 것이다. 물론 그 테두리 안에서 행복을 느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를 사랑하는 한 엄마로서, 나는 할 수 있는 한 그들이 자라면서 많이 배우고 다양한 기술들을 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우리 아이들은 수년간 수영을 배웠고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하지만 그 사실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는데 그 이유는, 내가 아는 한 단 두 명의 다른 증인 아이들만 그러한 피아노 교육을 받았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 조직은 방과 후 스포츠조차 허락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들을 먼 여행에 보내기도 하였다. 우리 아이들의 경우 스키를 배웠고 언제나 운동을 하여 일반적으로 멋있는 삶을 누렸다. 나는 매우 매우 활동적인 사람이었다. 따라서 다양한 회중적인 행사들, 모임, 봉사 그리고 나의 남편이 25년간 장로로 활동하였기에 나는 매우 바빴으나 그런 일을 하며 즐거워하였다. 나는 배운 대로 행하였으며, 만약 어떤 규칙이나 믿음의 지식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에도 그걸 억누르면 감내 하였다.
하지만 내가 증인들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던 가장 큰 문제는, 대학 교육을 포기해야만 하는 경우이었는데, 그 당시 나는 우리가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 살고 있으며 살아남기 위하여 무언가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내 첫째 아이가 지방대학에 다닐 때 그 아이는 비공개 책망(=지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 딸아이는 그 와중에도 공부를 하며, 2명의 사람을 워치타워 조직 안으로 이끌기도 하였다. 한편, 우리 아들이 대학에 갈 때는 책망을 받았다. 그런데 그러한 강압적 분위기는 저 꼭대기, 통치체에서부터 시작된 생각임에도, 그들은 그러한 생각이 단지 지방 회중에서 자발적으로 생겨난 견해이며 그들은 하나님이 사용하는 불완전한 인간으로 여겨지게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러한 통제적이고 권위적인 그룹에 있으며 언제나 상처받는 것은 아니다. 설사, 나와 우리 가족이 비난을 받는 경우가 있더라도, 나는 항상 내 자신과 가족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였다. “오, 다른 사람들 말에 전혀 신경 쓰지 마라. 네가 옳다고 하는 그것을 하면 된다. 다른 사람도 모두 완벽하지 않으니까 그런 것에 걱정하지 마라.” 우리는 모두 양심적이었으며, 우리가 생각한바 옳다는 것을 하려고 노력했고 다른 사람들도 그러리라 기대했다. 돌이켜 보면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나는 고지식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러한 조직안의 많은 사람들은 매우 고지식하다. 이 조직 또한 전체적으로 보면 15년 전에 비해, 매우 고지식하고, 통제적이고 권위적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돌이켜보면 장로들이 매우 무자비하여 적절치 못한 조언을 하거나, 고지식하여 상처 주는 제안들을 하는 경우를 보아왔다. 어떤 장로들, 베델에 있는 경우도 포함하여, 자신들 또한 음주 문제가 있으면서도 동일한 이유로 힘없는 젊은 증인들을 제명시키는 것을 보았다. 나는 진정 아이들을 사랑하였고 그들과 대화할 필요를 강하게 느꼈으며, 그들이 진정 악한 것이 아니라면 그들 청소년들, 감수성이 예민하고 혼란스러운 그 아이들을 가벼이 지목, 책망하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소위 ‘1975년에 닥칠 아마겟돈’이라는 허위 교리가 자라나던 시대에 살았다. 물론 우리 남편이나 나는 이러한 가르침을 믿지 않았지만, 그러한 분위기에 압도당하였다. 하지만, 나는 통치체(이 조직을 통치하는 나이든 아저씨들)가 선견지명이 있어서 1914년이 아마겟돈을 맞이할 마지막 세대를 가리킬 것이라는 사실은 믿고 있었다. 따져보자면 우리 할아버지부터 나의 손자까지 무려 4세대가 이런 분위기에 감돌며 지낸 것이다.
1995년 11월, 워치타워는 ‘세대’의 의미를 변경하였다. 나는 감정적으로 미쳐버릴 것 같았지만 이런 기분을 남편에게만 알렸다. 그 후 6개월 동안 우리 막내는 수없이 자살 시도를 하는 지경이 되었다! 성서와 협회 출판물만을 읽으면서도, 그 당시 나는 모든 것에 의문이 생겼다. 우리 가족은 모두 카운슬링이 필요하였다. 나는 워치타워를 반대하는 어떤 서적을 읽지도 않았고 조직에서 떠나라고 말하는 사람과도 어떤 대화를 하지 않았다. 이것은 정말 나 개인의 결정이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처음으로 우리가족은 야외봉사에 나가지 않게 되었고 집회참석을 중단하면서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약 6개월간 집회 참석을 중단한 동안, 단지 세 명의 자매와 두 부부(우리가 한때 이끌었던) 가 찾아왔을 뿐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배교자로 알려 지게 되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믿음에 충실한 생활을 하는 동안 어느 누구도 우리를 어떤 식으로든지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순회감독자와 장로들에게 증인의 믿음에 대하여 다양한 질문을 해보았지만 그들은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었다. 이 세상 사회에서 여러 가지로 속아오던 경험보다도 조직이 우리가족 전체를 한꺼번에 이렇게 무례하게 취급하고 갑자기 지목 처리한 것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더 이상 증인이 아니다. 왕국회관 참석을 중단하는 것은 나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그들을 나의 친구로 나의 가족으로 여긴 반면, 그들은 그 이후 수년간 집에서 집으로 입소문을 퍼뜨리며, 나를 ‘사단’으로 불리게 한 것이다. 이제 나는 친구라는 증인으로부터 사단주의로 불리게 된 것이다. 나는 또한 미쳤다는 소문,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소문, 굉장히 아프다는 소문, 가끔 정신이 돌아오면 곧바로 다시 이상해진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더 이상 그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다시 작지만 행복한 가족으로 돌아온 것이다. 매우 고통스러운 기간도 있었고 지금도 약간 그렇지만, 지금이 훨씬 행복하고 예전에 비하여 훨씬 정상의 삶을 살고 있다. 우리 막내도 잘 하고 있고 다시 대학에 다닌다.
여호와의 증인을 떠나면서 나는 어떤 유익을 얻었을까?
1. 나는 독서를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예전에 증인을 반대한 무엇을 읽거나 그것을 허락받지도 않았었다. 나는 순종적이기 때문에 대학에 가는 것을 허락받지 못하면서 증인으로 자랐지만 이제 나는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하라고 격려한다. 무언가 자신을 돕기 위하여 추가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알게 되었으므로 우리 아이들에게 교육에 대한 다양한 선택의 자유를 주고 있다.
2. 나는 비열한 취급을 원치 않고 공정한 대우를 원했다. 내가 중단하자 세 명의 자매가 찾아 왔었다. 내가 그들 예전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자 그들은 매우 퉁명스러웠다. 내가 전화로 그들에게 메시지를 남기려 하자 그녀의 남편이 수화기를 들고 ‘도대체 무얼 원하는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
3. 생생히 기억나는 이러한 기만당한 일들은 결국 우리를 조직에서 밀어 내게 된 것이다. 나는1975년을 경험한 세대고 이 ‘조직사회’는 전혀 믿음직스럽지 않음을 알았다. 그들이 ‘세대’의 개념을 바꾸었을 때, 나는 감정적으로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어느 누구도 이 조직이 얼마나 큰 문제를 변경한 것인지 언급 하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조직이 진리를 변경하는 대로, 그들이 하라는 대로 묵묵히 따라갔었던 것이다.
4. 우리 아들이 자살을 시도했을 때 지역 장로들 그리고 주위 증인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 우리 아들은 배운 대로 믿고 행했을 뿐인데,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왜 그가 회중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목을 받았는지 알지 못했고 그들 중 누구도 설명하여 주지 않았다. 도저히 그 이유를 짐작하는 것이 불가능 했다. 그 후, 그는 사소한 흡연문제로 곧 제명당하였다.
5. 내가 아는 증인 친구 중 너무 너무 많은 이가 우울증과 항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느끼기를, 이 길에서 속히 변화하거나(떠나거나),
아니면 그들과 똑같아 져야만 할 것이라고 느꼈다.
6. 나는 수혈과 병역 문제를 세심히 공부하였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이 조직이 사회의 평판을 우려하여 자신의 원칙을 변화시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초창기 조직의 규모가 작았을 때 그들의 원칙은 모두 훌륭한 것이었다. 하지만 점점 규모가 커지고 자산이 거대해지면서 그들은 반대자들의 정치적 사회적 핍박 등을 물리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조직은 일개인의 문제는 더 이상 문제되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사란 전체의 관리, 통제일 뿐인 것이다.
7. 내가 증인을 떠난 이유는 나의 고유한 결정들을 실행할 여지가 없다는 것에 지쳤고, 존경스럽지 못한 권위적 그룹의 제압에 피곤하였기 때문이다. 거의 반백년 나는 견디었고, 이젠 성장해야 할(변화해야할) 때인 것이다.
이 짧은 스토리는 내가 증인으로 무엇을 느꼈는지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나는 건 나는 아주 오랜 기간 ‘리더를 따르라’는 아이들 게임을 한 것이다. 이 게임은 대단한 모험으로 시작했다. 우리는 바위를 넘고 장애물을 뛰어 넘고, 돌고, 틀어서 가야하는 온갖 경로를 따른 것이다.
아이들과 이런 게임을 하는 건 물론 재미있는 것이다. 우리는 가시덤불과 진흙구덩이를 따라 건넌 것이다. 그중 일부는 넘어지고 바위에서 깨어지지만 우리는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맨 뒤를 따르던 아이가 조용히 물어보았다.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예요? 몇몇은 다쳤어요.’ 그러자 앞서간 누군가가 그의 머리를 때리며, 리더는 외치기를 ‘나는 너희보다 똑똑해, 나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아. 그러니 게임이나 하며 나만 따라오면 돼.’ 결국 그 아이는 그 리더도 자기와 같은 평범한 아이일 뿐임을 깨닫게 된다. 그 아이는 자꾸 다치는 것에 지치기 시작한다. 더 이상 게임이 재미있지 않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혼자서 게임을 하거나 자기와 같이 놀 다른 친구를 찾는다. 그가 ‘리더를 따르라.’는 게임을 그만두자, 몇몇 거친 아이들이
외쳤다. ‘우리는 더 이상 너와 놀지 않을 거야. 너는 우리 친구가 아냐.’
그동안 이 조직이 변경 시켜온 것들을 돌아보자면, 이젠 이들은 완전히 다른 그룹으로 변모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믿음에 충실한 주요 증인들은 이러한 점을 알아차리지 조차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1998년에 주의 만찬 기념식에 전년도에 비해 약 426,000명 정도 줄어든 것에 주목했다. 우리 부부 말고도 정신을 차려 깨어난 사람이 더 있는 것이다. 이 조직은 지금이 영적 낙원이라고 선전하지만, 내가 보기엔 영적 광분의 집단촌일 뿐이다.
내가 현 증인들에게 줄 수 있는 충고는 “제발 친절하세요, 그리고 항상 품위를 지니세요.”
만약 당신이 제명을 당했거나, 가족과 친구로부터 지목을 당해 떨어져 있더라도 항상 그들과 대화하라는 것이다. 당신의 부모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라. 만약 그들이 계속 당신의 전화를 피하고, 편지로 연락하거나 당신과 대화하기를 거부한다면, 그들은 친절하지 못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책임을 져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지구상엔 당신이 솔선하여 찾는다면 당신에게 친절하게 지내어 줄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다.
보낼수 없는 편지
김자매,
우리 딸아이가 그러데요.
김자매가 보고싶지 않냐고요.
저는 이리 대답했습니다.
김자매는 엄마 가슴속에 있기 때문에 보고싶다는 말은 안한다고.
증인 조직을 떠나고 나서 처음에는
조그마한 동네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서로 모른척하고 지나가게 될 것이 두려웠습니다.
김자매에게 나는 그럴 자신도 없고,
나를 외면하는 김자매를 본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도 큰 고통이 될 것 같아
그러한 상황은 영원히 없었으면 하는 아주 절실한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자매가 주로 다니던 길을 지나노라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근데 참 이상하지요.
자매와 만날 수도, 아는 척도 못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전 자매가 다른 먼 곳으로 가는 것도 싫습니다.
아는 척을 못하는 사이이지만
내가 느끼는 바람, 날씨 사시사철 변하는 자연은
간접적으로 같이 느끼며 살고 싶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욕심이지요.
우리 집 가는 길가에서 봉사하고 있던 자매를
운전하며 스치고 지나갈 때 자매는 벽 쪽으로 몸을 돌려 버리셨지요?
차라리 얼굴만 못 본 척 돌려도 될 것을...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예전엔 자매가 우리의 장군 같고, 대장같이 어깨가 넓고 힘있어 보였는데,
이제는 초라해 보여 가슴이 너무도 아팠습니다.
자매, 자매는 나의 평생 그리운 나의 친구요 자매입니다.
내가 세상을 떠나는 일이 있을 때,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사람을 말해 보라 하면
그 사람들 중에 자매가 들어있을 겁니다.
탈퇴서를 제출하고 회중의 공식 발표가 있기 전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날 수 있던 날
우린 그날이 마지막 만남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서로에게 긴급한 말에 밀려 정말 필요한 이야기를 못했습니다.
제가 조직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자매에게 말했을 때,
자매는 "증인 조직보다 더 깨끗한 조직을 찾게 되면 그때 떠나라.
그땐 말리지 않겠다"고 하셨지요.
그때, 전 어디로 가야할지는 몰라도
여호와의 증인의 생활 자체가
조직의 우상숭배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면
어디로 떠나야할지 몰라도 이곳을 떠나는 것이 먼저일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또 자매는 저에게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느냐고 물었고,
전 하나님은 신뢰하지만, 통치체에 대해선 직접 아는 바가 없으며
무조건적으로 믿을 수는 없다고 대답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조직을 떠나고 자매와의 이 대화를 가끔씩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 앞에 깨끗한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러한 사람으로 이루어진 어떤 조직도
하나님 앞에 완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생각해 볼 때,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불완전한 인간들로 이루어진 조직의 구성원들을 을 성령으로 이끄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모으시는 것 보다,
개개인의 심장과 신장을 살피는 하나님께서 그분이 주신 성경을 통하여
직접 성령으로 하늘로부터 오는 양식을 먹이고 돌보셔서
그 하나님의 사람 개개인을 움직여 나중에 모아보니
큰 하나님의 군대처럼 나라와 민족과 언어와 풍습에서 나오는
당신의 백성의 무리가 되는 것이 하느님에게는 더 어울리는 능력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자매,
자매는 신앙적으로 정착민 생활을 오래 해 왔고, 저는 늘 떠돌이였습니다.
우린 어쩜 영적인 면에선
아브라함처럼 하나님 인도하심을 믿고 떠난 여행자 일지도 모릅니다.
여행자 부족이 오랫동안 조직 생활을 하다보면
전통도, 문화도, 질서도 자리잡아 그곳의 생활이
세상의 중심인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정착 부족민들의 눈으로는,
떠돌이는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유랑민에 불과 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여행하는 유랑자들에겐,
정착 부족민이 느낄 수 없는 그 조직만이 가지는 독특한 냄새와
그 조직이 앞으로 향할 때 일어나는 바람의 방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부족민이 자리잡은 그 자리에서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유랑민은 유랑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닐진대,
우리가 가야할 곳의 방향이 맞는지 서로 의논하고 함께 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는 서로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
자매, 우리 서로가 얼마나 사랑하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우리가, 예전처럼 성서에 나오는 우리 하나님 이야기를 하며
왜 함께 기뻐하며 행복해 할 수 없단 말입니까?
왜 예전처럼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며 함께 하나님께 감사해하며 기뻐할 수 없다는 말입니까?
제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과 사랑과 공의와 지혜를 생각하면
가슴이 뿌듯해지고, 그때처럼 어깨가 으쓱해지는데 말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지도 않는
예수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통치체에 관하여 의심하는 것이
어찌 접촉불가의 존재로 자매와 인사도 못하게끔 된다는 말입니까.
자매, 제가 증인을 떠난 것이
협회가 UN에 가입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전 협회가 UN에 가입하면 왜 안되는지에 대해서는
그당시에 증인조직을 떠날만큼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놀랐던 것은
UN 가입 사실을 회중에 문의했을 때의 반응과 협회에서의 반응,
그리고 UN의 답변에서였고, 그것에서 참담함과 절망을 느꼈습니다.
협회는 단순한 도서관 이용 때문에 가입을 했다고 밝혔고,
UN의 공식 답변은 도서관 이용은 개방되어 있어 굳이
UN의 NGO-DPI에 가입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유일한 의사 전달 통로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협회의 반응은
너무도 구차하고 옹색하여
초라한 인간 조직의 한 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놀라움을 금치 못한 것은
조직의 성원들의 눈과 귀가 오직 조직에서 내려오는 출판물과 협회 결정에
로보트처럼 입력만 되도록 되어있고,
조직을 의심하는 어떠한 생각조차도
더러운 것에 접한 듯 피하는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의심을 한 것이 아니고, 워치타워 협회가 행했던 사실을 알고
왜 그러냐고 물어본 것이 어찌 영적인 더러움이겠습니까?
그 사실에 다가가면 어찌 영적으로 위험한 인물이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예수그리스도의 중보에 믿음에 아무런 변함도 없는데 말입니다.
정말로 워치타워 통치체가 하나님의 유일한 의사전달 통로이고
참으로 이 조직이 하나님의 유일하신 참 조직이라면
저는 정말로 억울한 희생자이고
저에게 분별력과 생각한 것을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하나님은
성서에서 배운 그런 하나님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별력을 주셨는데
이 사건으로 이상하다, 인간 조직의 냄새가 너무 많이 느껴진다고 느끼는 것이
어찌 배교의 시작이며 죄가 되겠습니까?
이 사건으로 하나님의 유일한 의사전달 통로라 자칭하는 조직에
구체적인 의심을 하게 되었고,
정말 이 조직이 하나님의 유일한 의사전달 통로인지 조사해 보게 되었고,
이때까지 이 조직의 행로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저는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너무나 많은 증거들을 구체적으로 갖게 되었고
하나님의 유일한 의사전달 통로라는 이 조직에서 이탈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저의 양심이라고 결론내렸습니다.
저의 마음이 진정으로 조직으로부터 떠나게 된 것은
어떤 사실 그자체가 아니고,
알게된 사실을 문의하는 과정에서
이 조직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자매는 "우리 손잡고 베델에 가서 직접 물어보자"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미 알고 있었거든요.
협회에서는 이미 회중으로 전달된 공식 내용 말고는
어떠한 답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단지 남아있을 우리 자매에게 불리한 처우가 걱정이 될 뿐이었습니다.
지금도 혹 이일로 우리 자매에게 누가 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램뿐입니다.
저와 친분있는 분에게 같이 봉사를 갔을 때
제가 한 말에 놀라면서도 동의하셨던 그 말 생각이 나시는지요?
"저의 종착역은 여호와의 증인이 아닙니다. 제 종착역은 하나님께로 이지요."
"여호와의 증인이 틀리다면 저는 또 떠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찾아본 중에는 이곳이 참 인 것 같습니다"라는 말입니다.
그때 분명히 자매도 틀렸다고는 하지 않으셨지요.
자매,
저는 한낱 초라한 먼지 같은 사람에 불과하지만,
예수 그리스께서 대속하여 주시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지극히 개인적인 신앙에도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가끔씩 파수대와 출판물을 살펴보면
워치타워 간행물들에 사람의 말들이 너무도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유대교도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완벽히 지키고자
율법을 세분화시키고 현실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수많은 교리들을 만든 모습들이 여호와의 증인 통치체에서 결정된
세부적인 행동 지침으로
각 회중으로 내려오는 모습들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매, 지금 제 솔직한 심정은
차라리 제가 틀렸고, 자매가 옳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생각은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습니다.
왜냐하면,자매는 돌이키기에는 너무 멀리 들어가 버렸고,
너무나 많은 시간과 열정과 희생을 치렀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제가 조직에 대해 오해하였다면,
탈퇴자로 이제는 배교자의 이름표를 조직에 의해 달게 되었을지라도
어떤 대접을 받더라도 회개하고 돌아가는 것이 쉽기 때문입니다.
정말이지, 자매가 옳고 제가 틀렸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조직을 나온 지 시간이 조금 흘렀지만
자매와 함께 연구사회하던 저와 친분있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못했습니다.
몇 년 동안 자매가 피땀으로 봉사를 해 놓은 터전에
전 도저히 재를 뿌릴 수 없었습니다.
제가 자매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을 얼마나 아까워했습니까?
도저히 도저히 자매가 메고 있는 밭에 제 손으로 재를 뿌릴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양심의도리라면 도리 차원에서
간접적으로 여호와의 증인을 그만 두었다는 사실만 전달했을뿐...
자매,
저, 정말로 대책없는 바램 한가지만 말해볼까요.
우리가
나이가 많이 들어
나중에, 나중에,
제가 시골에 작은 집을 짓게 되면
나란히 집한채를 더 짓고 싶습니다.
정원엔 많은 들꽃들을 심어놓을께요.
자매가 꽃을 아주 좋아하잖아요.
그땐 오로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만 가지고 함께 성경읽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곱씹으면서 행복하게 살아요.
예전에도 제가 늘 그랬잖아요.
난 늘 미안하게 내 먹고 살려고 돈번다고...
자매는 늘 하나님 일만 하면서 고생하니,
돈은 내가 내야한다고...
이 소원이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것이 아니면 계속 기도하렵니다.
전 한때 여호와의 증인이었습니다.
제가 간절히 믿어서 다녔던 것이 아닌 단지 엄마가 다녔기 때문에 저를 이끌고 가셨죠.
그 당시 한 8살 정도 됐었죠.
저는 단지 끌려 다닐 뿐이었습니다.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니 성경을 요약해서
독후감식으로 문서를 만들어서 연설이라는 것도 했구요.
한 16살 정도 일겁니다. 이 쯤 되니 종교에 대한 믿음이 불확실해지더군요
우리는 피조물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가 창조했을 수도 있고 당연히 창조주가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면 여호와의 증인이 틀린 건 아니겠다. 이렇게도 생각 할 수 있죠.
하지만 수많은 종교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기독교 불교 천주교는요? 군대에서도 이 세 종교는 필수로 하는데 그렇다면 군대가 틀린걸까요? 물론 군대가 이 세 종교가 진리여서 보낸 것이 아니겠죠. 단순히 휴일에 병사의 잡생각을 없애려고 보내는 거겠죠.
저 또한 군대를 다녀왔기 때문에 종교가 여러 방면으로 필요하긴 합니다
더군다나 후임병은 더더욱 필요하죠.
16살 이후로는 이 증인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 증인이 진리라면 타 종교인들은 누굴 믿고 있는 걸까요?
여호와의 증인의 존재도 어디서 월급이 나오는 것도 아닌 것 같더군요 단지 증인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헌금으로 유지를 하는 것 같은데 여기까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워치타워가 여호와의 증인의 본부라고 하죠? 우선 워치타워에서는 팜플렛이 출간 됩니다. 이름이 파수대, 깨어라, 그리고 신간 성경도 나오구요.
갖가지 팜플렛이 쏟아져 나옵니다.
지금 엄마 방에 가면 그 팜플렛이 방 한 가득 있습니다.
그런데 어릴 때 부터 봐 왔었는데 그 팜플렛은 하나같이 워치타워에서 만드는 건데 워치타워에는 신의 호출을 받는 신의 사자가 있는 걸까요? 어떻게 그렇게 많은 팜플렛을 계속 만들 수가 있죠?
단순히 성경의 내용을 요약하고 되새김질 해서 만든다 하더라도 그 양이 실로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 합니다.
아니면 워치타워는 장사꾼인가요? 언변 좋고 글재주 좋은 사람이 샤샤샥 해서 그럴싸하게 만들어서 증인들을 현혹하는 걸까요?
전 여호와의 증인이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워치타워 정말 베일에 쌓여있는 집단이라 생각 합니다.
과거 증인이었던 분들의 말을 들어 보면 “증인들은 자신의 잘못은 헐뜯으려고 하지만
워치타워의 잘못을 옹호하려는 성질이 있다” 라고 하시더군요.
솔직히 16살때 이 종교를 그만 둔 것은 친구들로 부터의 안 좋은 시선 때문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너 무슨 종교 믿니?” 라고 할 때 기독교요 (불교,천주교) 라고 하면 “그렇구나!” 뭐 그런 반응이죠.
하지만 여호와의 증인이요 라고 하면 대부분 안 좋게 바라봅니다. 군대 안 가려는 집단이고 또한 집에 무작정 들어오려고 한다고 ... 대부분 싫어합니다.
저 또한 이제는 싫구요.
하지만 워치타워 전 그 집단의 속을 알고 싶습니다.
피해자를 줄이고 싶습니다.
1970년대 초반에 워치타워 여호와의 증인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전 광풍처럼 이 조직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게 되었는데 한 동안 정말 꿈같은 나날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저의 모든 꿈과 소망과 기대가 이 조직 안에서 이루어지고 성취되고 저를 만족케 할 것이라는 환상이 들면서 더 이상 세상의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3년 동안의 희열과 기쁨
세상 물질 명예 권세 부귀영화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을 체험하며, 제 안에서 잉태되어 자라난 지상낙원에 대한 소망이 저의 전 인생과 미래를 투자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낙원은 저의 목적이요, 소망이요, 믿음이었습니다. 저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은 희열과 기쁨에 도취되어 보낼 수 있었습니다.
‘약 3년 동안은 말입니다.’
이 집단이야말로 하나님이 말세에 남겨두신 깨끗하고 정직한 단 하나, 참 종교의 남은 자 교회로구나!’ 이 종교 조직을 알게 하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한없는 감사와 감격 속에서 살았습니다.
‘왜 내가 진작 이 조직에 들어오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을 곱씹으며 말입니다. 저의 믿음은 하늘을 찌를 듯 했고 한 때는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을 정도로 낙원의 기쁨을 맛보는 체험도 했습니다. 성경만 보고 있으면 그것이 천국이요, 저에게 최고의 꿈같은 시간이 되어 주었습니다.
제가 이 조직을 위하여 목숨 걸고 충성해야 하겠다는 의협심(義俠心)은 제 인생을 포기하게 할 정도로 맹목적인 추종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오래된 분들에게 넌지시 듣게 되는 충고 아닌 충고는 “너무 열심을 내지 않는 것이 일상에 좋을 거야?”라는 식의 말이었습니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답니다. 역시 신념과 사상은 어떤 틈만 생기면 모든 구조가 마치 피라미드처럼 연결되어 있기에 와르르 무너지는 취약점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참 신앙과 신념은 그 정체를 서서히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간 근근이 명목만 유지하는 그런 종교생활이 반복될 뿐이지요. 이 조직에 들어 온지 3년 이후 부터는 말입니다. 이것이 모든 이단의 피할 수 없는 함정이요. 이를 감추기 위하여 스스로 외골수로 빠지고 독단에 흐를 수밖에 없는 치명적 오류입니다.
서서히 드러난 교리의 조작
이제 10년이란 조직 생활에서 가졌던 신앙심마저 다 까먹고 남은 것은 그저 성경을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풀어대는 잔재주와 이중성으로 내 영혼은 피곤하여 지쳐 버리고 그날 그날 연명하는 종교 생활에 환멸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증인들이 당연히 거치는 과정이리라 생각하지만, 노련한 여호와의 증인의 균형 잡힌 신앙생활이란 이름으로 자기를 속이는 이중성이 여기에서 형성되게 되어 있으며, 언제나 겉과 속이 다른 근사한 외식이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경우는 “이것이 아닌데” 하면서 한 발을 빼고 언제든지 도망칠 궁리를 하게 되는 것이 뭐 정해진 코스이지만, 누구하나 이를 내색하는 자는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겁니다. 왜 얼마나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가식화 하는지 이것이 체질화 되었기에 어느 누구도 감히 조직에 불만을 갖게 되거나 교리에 이의를 제기할 자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하고 지내는 있는 것이 솔직한 표현입니다.
만일 그런 내색을 보인자가 있다면 그때부터 그 사람은 어느새 부터인가(?) 지목의 대상이 되고 경계의 대상이 되어 그를 주시하게 되는 그야말로 저 동토의 나라에서나 있을 법한 감시체계가 작동하는 것이 바로 워치타워의 체계입니다. 언제 여호와의 증인이 다른 종교 조직에 대하여 진지하게 연구는 해 보았나요? 그저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내 것에 갇혀 내 것만 옳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다른 종교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진지하게 연구하는 자세마저 저들에겐 없는 것입니다.
결국 통치체의 일방적인 독주와 비성경적임을 지적한 나는 그 조직에서 견디지 못하고 조직은 배교자란 누명을 씌워 추방 시키게 된 것이지요. 너무나 우스운 것은 사법위원이란 자들이 나에게 와서 확인한 것이라고는 “당신은 통치체를 유일한 신권조직이라고 믿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였습니다.
인간이 만든 조직이 절대 기준
지금 와서 생각되는 것이지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가?” 라고 묻지 않았던 것이 너무 다행스런 일입니다. 이들 스스로 자신들이 인간이 만든 통치체의 조종을 받고 있는 배교자 집단임을 자인한 꼴입니다. 참과 거짓의 기준이 인간이 만든 조직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신권조직임을 믿는지 안 믿는지로 결정되다니요? 이러고도 여호와의 증인이 성경을 믿고 있는 참 종교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러울 뿐이요. 잠시 동안이나 이곳이 참 조직이라 믿었던 제 자신이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히 이 조직을 박차고 나갈 엄두는 내지 못 했죠. 아니 그럴 용기마저 없었습니다.
아무리 조직이 부패하고 썩었을지라도 여기에 뼈를 묻을 각오로 전적 헌신을 해 온 터라 달리 생각을 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죽으나 사나! 여기서 떠날 수는 없지 않은가요? 늘 언제나 여호와증인 조직에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위로 아닌 위로를 삼는 성구가 있습니다. "주여 우리가 어디로 가리이까?" 베드로의 "쿠오바디스도미네"(quovadis domine)도 아니고 체념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절규입니다.
이 조직이 잘못 된 것도 알고, 거짓 예언을 한 것도 알고, 사랑이 없는 것도, 진실성이 없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이 조직만한 곳이 어디 있겠는가? "당신들이 이 조직을 떠나서 어디로 갈 곳이 있단 말인가?" 란 협회의 질문에 아무도 다른 곳에는 참이 존재할 수 있다고, 아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대단한 세뇌의 결과이죠).
결국 이 조직이 참이기 때문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갈 데가 없어 못가고 있는 그 신세가 너무 안타깝기만 했답니다. 그래서 저는 더 이상 거짓 종교집단에 더 이상 머물 수 없다고 스스로 박차고 나온 것이 아니라 자의반 타의반으로 여호와의 증인 조직을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됩니다.
애정 쏟은 조직 나오다
10년 이상이나 애정을 쏟은 이 조직에서 떠나는 것을 너무나 아쉬워하며 말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도저히 이단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자들이 자력으로 구원을 이루어 보겠다고 하면서 도달하게 되는 곳이 바로 이단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는 간곳이 없고 인본주의가 판을 치는 곳 어설픈 논리와 이론과 사상으로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의식화 시켜 하나의 생각으로 묶어 버려 인간의 이성을 말살시키는 곳이 바로 이단 사이비 집단입니다.
아마도 저를 이렇게 쳐 내지 않았다면 지금도 난 그 조직을 감히 제 발로 떠나지 못했을 겁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 역사 없이는 도저히 이곳을 빠져 나올 수 없는 곳, 아니 빠져 나온다 할지라도 기독교 복음을 받아들일 확률은 0.1%도 안 된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어 갑자기 배교자로 낙인찍히는 영광의 상처는 안고 살게 되었지요. 이 사건으로 인하여 왜 여호와의 증인은 사상이 의심되는 자를 제명시키고 단교의 쓴맛을 보게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말 그대로 "조직의 쓴맛" 을 보여 준 것입니다. 너무나 견디기 어려운 외톨박이 신세, 그리고 이상하게 보는 눈초리 아마도 왕따의 원조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차가운 형제들의 시선은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으며, 인격 모독 그 자체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당사자는 스스로 격리 시키고, 회중 형제들의 접근을 차단시켜 조직의 와해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고도의 전략인 것입니다.
종교를 떠나게 된 것도 서글픈 일인데 절대적으로 교제를 끊게 하여 스스로 자포자기 세상에서 타락으로 떨어지든가? 아니면 “제가 죽을죄를 졌습니다”라고 사죄하고 다시 그 치욕을 감수하고 조직 안으로 들어오든가? 양자택일 하게 하려는 것이 숨겨진 음모입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사랑도 가족 형제지간의 정도 다 끊어버려야 하는 냉혹함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배교가 전화위복
어느새 저는 여호와의 증인 배교자가 되었고 절대로 가까이 하면 안 되는 사람으로 낙인 찍혀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화위복인가요? 아무튼 자의반 타의반 이 조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얼마나 서운했던지, 못이기는 척하며 “‘통치체’가 하나님의 유일한 신권조직이라는 것을 믿는다”며 조직에 머물러 있을 걸하며 후회도 했답니다. 이토록 이단의 사상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인간의 정을 파고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조직을 떠난 제겐 창조주에 대한 신앙심이 없음이 밑바닥처럼 드러나 버리고 결국 조직 사상에 물들고 관념에 포로가 되었음을 직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조직을 떠나서는 어떤 것 하나 스스로 내 주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믿고 고백하는 신앙이 아예 없다는 거예요. ‘아하! 그 동안 예수를 믿은 것이 아니라 인간 조직을 믿고 신뢰 했구나?’라고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지요. 아주 쓰디쓴 경험을 통해서 말입니다.
인본주의적인 시각과 인간적인 시각으로 성경을 보다가 지쳐서 그만, 회의론자가 되고 맙니다. 구세주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인 믿음은 찾을래야 찾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불신자였습니다. 여기도 저기도 함께 할 수 없는 그런 신세가 되고 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가나안을 향하여 나갔지만 광야에서 모세에게
우리를 왜 여기까지 이끌어 내서 이런 고생을 하게 하냐고 불만을 토로한 것처럼 조직을 박차고 나온 내 자신이 한심하기까지 할 정도로 나는 깊은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지요. 결국 나의 신앙의 혼돈의 계절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진리에 대한 고독한 싸움
이때부터 진리에 대한 외롭고 고독한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제가 발을 디딘 곳마다 기독교의 은혜 복음은 아니고 다 이단의 그림자가 넘실거리는 행위구원론의 가르침이 있는 그런 종교 집단들이었다는 것이지요. 이단은 잘 빠지는 체질(특성)이 있으며, 이단은 사상이요, 하나님의 영의 역사라는 것을 철저하게 배우게 하셨습니다. 스스로의 연구로 성경을 깨달을 수 있고, 제가 언제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제가 노력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이 생각이 죄요 바로 회개해야 할 그 불순종임을 알게 하셨던 겁니다.
제가 연구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임해야 하며, 제가 하나님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택하시고 사랑해 주셔야 하며, 스스로 노력해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가 오셔서 제 대신 죽어 주시고 피 흘려 속죄해 주신 그 은혜를 믿고 거저 받게 되는 것이 구원임을 알게 하셨던 것입니다.
드디어 인간의 노력만으로 진리에 이를 수 없음을 처절하게 깨닫게 되면서 주님 앞에 항복하게 됩니다. 이 깊은 방황의 늪에서 벗어나 구세주 예수 앞에 서게 하였으며, 제 자신의 실존을 보게 하였습니다. 주님을 만나는 체험과 더불어 제가 죄인인 것이 실감이 나고, 이제까지 찾아 헤매던 때에 그 하나님은 이미 제게 와 계셨습니다. 구원은 노력하여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가 이루신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내 것이 된다는 사실과 왜 그토록 삼위일체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았던가? 왜 그토록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행위구원에 집착하게 되었던가? 이것이 바로 죄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하신 것이지요. 회개란 바로 어떤 죄지은 것 하나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을 이루려 했고, 내 힘으로 율법을 지키려 했으며, 내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이 교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오직 은혜의 선물
모든 것이 일시에 믿어지고 깨닫게 하시는 은총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진리는 제가 성경을 풀어 해석해 내는 것이 아니라 제가 죄인임이 성경에 의하여 해석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조명에 의하여 내가 구원 받아야 할 타락한 죄인임이 폭로되는 것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나의 긴 방황의 터널을 지나가는 순간입니다.
드디어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진리는 제가 연구하고 탐구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진리의 조명 아래 내가 회개할 자로 드러나야 하는 존재임을 알게 될 때만이 주님은 나의 구세주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진리가 믿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간단하게 표현했지만, 이단 사상에 찌들었던 종교의 위선을 벗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으며, 이 질긴 이단의 영을 떨쳐 버릴 수 있게 된 것도 오직 물 붓듯이 부어주시는 성령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노 춘길 입니다. [1]
현재 나이 50세이며 서울 수유동에서 세탁소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의 경험담을 하나님 앞에서 한점의 거짓 없이 형제들에게 알리겠습니다
저는 1973년 8월 3일 하나님의 승리(현 동대문 축구장) 국제 대회때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 당시 협회 발표 1975년에 종말이와 증인들만 낙원 간다는 말에 너무나 기뻐서 다니던 고등학교를 중단해 가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정규 파이오니아를 약 4년 간 했습니다.
1979년 3월 15일 중립 문제로 3년형을 받고 처음에는 남한산성(육군 교도소)에서 6개월 간 충성했고 그 이후 강릉 교도소에 이감이 되어 3년에서 몇 개월 빠진 1981년12월 25일 성탄절 특사로 출옥을 했습니다.
잠시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였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임신을 했습니다.
임신 8개월쯤 되었을 때 저의 행복을 앗아갈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비군 훈련 통지서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예비군을 거부하면 징역 1년에서 최고 3년이라고 법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또 감옥 가든지 아니면 훈련을 받든지 선택을 해야 되었습니다.
전에 징역을 살 때는 혼자였지만 지금은 가족이 있어 상황은 달랐습니다.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저의 회중 장로에게 찾아가 이 고민을 알리니 개인 양심 문제라 했습니다.
협회에도 편지를 써 저의 고민을 알리니 개인 양심 문제라는 답장만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훈련 날짜는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밤에 잠이 안 올 정도로 저의 자매와 고민을 했습니다.
또 감옥 가야 하나 생각하니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 했습니다.
과거에 남한 산성에서 일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하루 종일 매 맞았습니다. 쇠창살 사이에 손가락을 넣은 후 사정없이 헌병들에게 맞았습니다. 너무나 손이 아파 몇 개월이나 밥을 제대로 못 먹었습니다. 밤새도록 잠 못 자고 벌도 섰습니다. 겨울에 눈 위에서 팬티 바람으로 뒹굴었구요. 가슴을 많이 맞아 가슴이 아파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습니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정도로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그 당시 전두환 정권 시절이라 전국적으로 순화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우리 증인들은 배로 고통이 심했습니다. 그래서 3년 징역이 백년 정도 긴 세월 같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또 감옥을 가야 된다고 생각하니 죽어도 그 지긋지긋한 감옥은 가기가 싫었습니다. 아니 무서웠습니다.
지금은 만삭이 된 아내가 있기에 제가 감옥 가면 가정은 풍비박산 되는 것 너무나 뻔하였습니다.
제 가슴을 억누르는 현실에 저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때 여호와께 기도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성경책을 펴놓고 자매와 함께 기도했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저는 여호와의 증인 조직에 남아서 평생 당신을 섬기고 싶습니다.
그런데 전 이제 죽어도 감옥 가기가 싫습니다 아니 못 갑니다 만약 가면
저의 아내는 어떻게 하며 배속 아이는 누가 돈벌어 키웁니까?
우리 가정은 파괴됩니다.
성경에 보면 감당할 시험 밖에 주지 않는다 했는데 저 또한 만삭이 된 아내를 버려 두고 감옥 가서 우리 가족이 함께 죽음보다 더 한 이 고통을 받는 것 솔직히 감당할 수 없는 시험입니다 지금은 솔직히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우리 여호와의 증인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고통을 받아야 낙원 가고 평생을 이렇게 고난을 받아야 구원 줍니까?
사랑이 많으신 여호와 하나님!
만약 살아 계시다면 저의 기도를 듣고 계시다면
저에게 직접 말씀해주십시오.
저의 자매는 증인을 하는 과정에서 집안에서도 버림받아 어디 기댈 때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처와 자식이 어찌되든지 말든지 감옥 길을 꼭 택해야만 됩니까?
여호와 하나님!
직접 저에게 말씀을 해주십시오.
저는 밤마다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하는 과정에 저의 아내와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기도한지 7일 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한참을 울면서 기도하고 있을 때 눈물 방울이 성경책에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매 끝으로 성경책에 눈물 방울을 닦고 있을 때였습니다.
눈물 방울과 함께 적셔져 있는 어떤 성경 구절이 제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겉옷을 팔아 칼을 사라" (누가 복음22:36).
전에는 이 성귀를 봐도 그냥 지나치곤 했지만 지금은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습니다.
돈이 없으면 그만이지 자기가 입던 귀한 옷까지 팔아서라도 칼을 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저는 놀랐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른 성경 말씀도 생각이 났습니다
예수님이 체포당할 즈음에 베드로는 방어용 목적에 칼을 지니고 있었다는 말씀과 아마 기록에는 없지만 12사도 모두가 예수님의 지시에 이때 방어 목적에 칼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또 있습니다.
늘 아는 성귀이지만 현역 군인의 신분으로 백부장 고넬료가 침례를 받은 사실 말입니다.
저는 처음에 제대 군인이 아닌가 했는데 사도행전10:7절에 보면 "한결같은 군인"을 데리고 다녔다는 기록을 봐 현역 군인임을 확신했습니다.
제가 기도하는 이 밤에 많은 성경 말씀과 생각으로 뜬눈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아침이 새롭게 밝았습니다.
아 훈련을 받아도 되는구나! 군인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구나!
성경에 창녀 라합도 구원을 받은 사실이 있는데 군인도 구원을 받을 수 있구나!
성경에 "누구든지?군인도 포함하여 조건이 없음?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또 성경에 “누구든지?군인도 포함하여 조건이 없음?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않으리라."
아침 햇살의 찬란한 태양처럼 그동안 얼어붙었던 내 마음이 눈처럼 녹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3년 간 감옥에서 고생한 이유는 내 마음이 스스로 감옥이 되어 가두어 두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제 해방되었습니다 !
이제 자유를 찾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는 자매와 함께 눈물을 닦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침략 국가라면 몰라도 방어 목적으로 총을 드는 것은 죄가 안된다는 성경 적 분명한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훈련을 받았습니다.
마음이 편하였습니다. 홀가분 하였습니다. 자유! 행복!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옛날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훈련을 받으면서 동료 청순한 예비군 아저씨들을 보면서 하나님은 이 많은 사람을 죽이고 우리 증인들만 구원 준다는 협회의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허무 맹랑한 말인지 그 동안 믿었던 내가 너무 어리석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걱정이 되었습니다.
협회가 겉으로는 병역은 개인 양심이라고 하지만 저를 그냥 놔 둘 리 만무하였습니다.
생각했던 대로 회중 장로나 형제들이 3년이나 충성을 지키고 나온 후 예비군 문제에 타협을 했다며 이해가 안된다고 문제를 삼았습니다. 그리고 집회 때 장로 형님과 형제들이 저에게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집회 후 모임을 가지자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개인 양심으로 훈련을 받았다며 절대로 타협은 안 했다고 했습니다.
제가 계속 회중에 남아서 여호와를 섬 길 수 있도록 해달라고 탄원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예비군 훈련을 받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러자 우리 회중 장로는 협회에 연락을 해보고 그때 다시 모임을 가져 보자고 했습니다. 며칠 후 순회 감독자가 협회 대표로 이 문제 때문에 우리 회중에 왔으며 장로들과 모임을 가진후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타협을 하여 이탈을 해놓고 왜 자신을 합리화합니까?”
이탈 죄로 제명을 시켜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저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조직책에 이탈에 관한 협회의 마련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여기 조직책에 보면 이탈이란 개인의 동의가 있어야 이탈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자 보십시오. 저는 분명히 이탈 안 했습니다. 저 개인의 양심을 존중해 주십시오."
그러자 순회 감독자는 저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탈 해놓고 안 했다며 억지를 부리면 안되지요."
또 저는 "이탈을 하고 안 하고는 제가 결정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자 순회 감독자는 "꼭 조직에 복귀를 원한다면 회개하시고 복귀 마련을 따르셔요."
저는 그래서 이렇게 말씀 드렸습니다, "죄도 없고 제명도 안 받았으며 이탈도 안 했는데 회개는 무슨 회개이며 복귀는 무슨 복귀입니까? 제가 조직에 들어가기 위하여 거짓 회개라도 할까요?"
그 감독자는 "거짓 회개는 안되지요 진심으로 회개를 해야 되지요." 그러자 저는 “내 양심으로 훈련받은 것 죄가 안되고 또 협회 방침에 중립은 개인 양심이라고 분명히 하지 않습니까? 훈련받은 것 죄가 되나요 분명히 말씀해 주셔요?" 그러나 그 감독자는 "훈련을 받은 것은 죄가 아니지요 이탈을 한 것을 가지고 논합니다."
그러자 제가 "제가 어떻게 이탈을 했습니까 그 행위를 말씀해 주십시오. "
그 감독자는 이젠 “협박”을 합니다, “자꾸 이런 식으로 말하면 배교자로 제명됩니다.”
이때 우리 회중 장로는 묵묵부답 이였습니다.
이렇게 수 시간 옥신각신 해도 모든 장로들이 일어서더니 자기들끼리만 수근 수근하면서 집에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회관 바닥에 앉자 지난 10년을 생각하면서 한없이 울었습니다.
1973년 침례를 받은후 학업을 중단하고 정규 파이오니아로 섬겼던 일들을 생각하였습니다.
3년이나 감옥간일 등을 생각하였습니다.
낙원을 바라보고 이 청춘을 바쳐 고생했건만 지금은 낙원은 고사하고 고작 이 꼴을 당하자고 이렇게 청춘을 허비했단 말인가?
전 세계 우리 형제들도 나처럼 언젠가 결국 이런 꼴을 당하고 만다는 사실을 알겠는가?
이 장면을 말로 형제들에게 알리면 "소설 같다. 거짓말이다. 협회가 그럴 리가 있는가?” 하면서 저를 믿지 않을것 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 전 세계 우리 증인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는지를 한탄했습니다.
저는 협회의 검은 얼굴을 이때 비로소 보았습니다.
그리고 집에 가면서도 계속 울었습니다.
그리고 목요일 봉사회 집회 때 배교자로 제명 발표 되었습니다.
저의 억울한 사정을 형제들에게 알리려고 해도 이미 인사 및 대화 거부로 차단시킨 뒤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증인 5명이 동반 이탈했습니다.)
저의 아내는 "협회는 여호와의 증인 조직이 참 조직이고 이 종교를 믿어야 낙원 간다고 말하면서 왜 억지로 제명을 시키려고 하는지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비난했습니다.
그 이후 저는 회중에서 계속 여호와를 섬길 수 있는 기회가 협회에 의하여 파괴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저의 제명 처분에 불만을 품었다고 하면서 반대를 한 저의 회중 장로 최 백용 형제도 같이 배교자로 제명 처분 당하였습니다.
형제님들, 최형님의 제명 처분을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이 분의 반발이 두려운 협회는 사법 모임도 없이 회중에서 공개 발표도 없이 협회 대표 오순규 장로가 형제들 개개인에게 전화를 하여 제명을 알리고 절대로 대화를 해서는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천지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이분은 1980년도 비상계엄이 있을때에 파수대가 폐간될 위협이 생길 때 당숙인 최규하 대통령을 찾아가 복간되도록 힘을 쓴 분입니다. 이 분이 지금 "여호와의 증인 이렇다"라는 책을 써 협회에 대하여 정보가 어두운 형제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있고 지금까지 약 500명 정도 증인들을 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월이 몇 년 흘렀습니다.
1985년 7월 달쯤 한국일보에 여호와의 증인에게 알리는 "워치타워 비밀"이라는 광고가 실렸고 이 책자를 무료로 준다고 했습니다.
저는 즉시 신청하여 이 책자를 보고 다른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저는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워치타워가 거짓 조직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대충 느낌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읽어보고 탄복 했습니다.
협회의 거짓을 아주 소상히 정확히 적고 있었습니다:
144000명과 적은 무리에 대하여
1914년 과 예수님 임재에 대하여
종말교리에 대하여
제명처분 제도에 대하여
병역 문제에 대하여
워치타워와 통치체에 대하여
저는 이 글로 확실히 워치타워는 사단의 조직임을 확신했고 현재 가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증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성경에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는 유형임을 확실히 알게되었습니다.
협회의 잘못된 성경 해석 체계로 인하여 증인들이 스스로 영적 감옥에 구속되었고 구원받기 위하여 평생 고통스럽게 살게된 것입니다.
결국은 낙원도 못 가고 저처럼 제명되거나 거짓을 알고 이탈하게 되는데 말입니다.
이 책은 정확한 성경을 근거로 그리고 협회의 출판물을 근거로 아주 확실하게 워치타워의 거짓 가르침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저는 즉시 최 백용 형제 사무실에 찾아가 이 책자를 보여 주니까 놀라워 하시면서,
“나도 협회가 이상하다는 것은 알아도 확실히 워치타워가 사단의 조직이라는 것은 몰랐습니다.
이 책으로 워치타워에 속고 있는 불쌍한 우리 증인들을 구해 냅시다. 때가 시급합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쓴 신철수 형제를 서울로 와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서울에 온 신 형제와 서로 만나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신 형제 제명은 너무나 어이가 없었습니다.
1982년 5월9일 파이오니아를 하고 있는 신 형제는 전도 봉사가 별로 효과가 없다는 점을 알고, "효과적인 전도 봉사" 라는 주제 아래 원고지 200쪽의 논문을 써 협회에 보냈는데 이 일로 배교자 제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워치타워 비밀 서론에 있음).
그리고 서울 신당동에 최 백용 장로 사무실에 저와 또 이 글을 읽고 탈퇴한 노량진 회중 최 기식 형제 등 그리고 몇 명의 형제 등 약 10여명이 모여 우리 증인들을 구해 내는 형제 전도 회를 조직하였습니다.
우리는 “워치타워 비밀의 책”을 서울 순회 대회 회관 앞에서 전하였는데 내막도 모르는 증인들이 자기를 구해주는 책인줄도 모르고 오히려 자기들을 해치는 책 인줄 알고 책을 빼앗는 바람에 몇 부 전하지도 못하였습니다.
그 이후 저희들은 옛 증인들과 피해 가족 등 1381명의 서명을 받아 워치타워 협회는 성경을 교묘히 해석하여 낙원이라는 환상을 심어주면서 인간을 철저히 파괴하는 종교 범죄 조직임을
서울 지방검찰청에 고발을 하였습니다 (조선일보 1986년7월17일).
수사를 맡은 검찰청에서는 "워치타워가 병역 거부하라고 뒤에서 교사하여 범죄를 저지른 점 세상이 다 알지만 이는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 없이 워치타워 임원을 구속수사 할 수 없다" 기에 사건은 이내 종결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호와의 증인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참으로 낙원 가는데 제가 훼방 놓으면 저는 천벌을 받아야 됩니다.
워치타워가 인도하는 길은 확실히 낙원 가는 길이 아님을 저는 너무나 분명히 성경 적으로 알고 있기에 안타까운 심정에서 이 글을 쓰는 것입니다.
협회의 거짓 낙원 길에 속아 전 세계적으로 약 1000만 명이나 인생을 망치고 닭 쫓은 개 지붕 처다 보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에게는 이 일이 결코 남의 일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는 배후에 사단 마귀가 미혹하는 영으로 인류를 속이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이후 옛 증인을 많이 만났는데 한결같이 여호와의 증인조직에서 빠져나오게 해주신
하나님께 너무 너무 감사하고 있으며 또한 조직안에 있는 증인을 불쌍히 여기고 있었습니다.
물론 협회의 거짓을 알려면 성령의 인도나 전문적 성경 지식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저도 압니다.
이는 협회의 거짓은 쉽게 알 수 없도록 교묘히 포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협회가 확실히 속보이는 소리를 해도 증인들이 눈치를 못 채는 것은 워낙 심하게 증인들이 세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낙원이 있어도 그 낙원은 마귀 조직인 워치타워를 따르는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주려고
하나님이 준비한 것이 아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아마 이 글을 읽은 형제들은 아마 많은 질문과 의문 속에서 갈등이 클 것입니다.
계속 알아보시고 “워치타워 비밀”을 읽어 보셔요.
하나님은 이렇게 여러분에게 호소 하십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워치타워] 나와 그의 [협회]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재앙을 함께 받지 말라.”
워치타워는1935년 병역 거부 교리와 수혈 거부 교리를 만들어 의식화 교육을 시켰고 이에 수 많은 신도가 죽거나 고통의 함정으로 밀어 넣었으며 거짓이 탄로 날까봐 배교자로 제명시켰고,
대화 단절을 시켜 안에 있는 증인이 협회의 내막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도록 차단하였기에 지난 120년 동안 국제적으로 사단 마귀가 종교 사기를 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미 1914년에 거짓이 탄로 난 워치타워에 충성하지 마시고 성경과 하나님께 충성 하시여
꼭 알아보시고 진리가 아니면 과감히 그곳에서 빠져 나오십시오.
그 이후 조금은 방황하게 됩니다.
그리고 계속 기도와 성경으로 진리를 찾도록 성령의 인도를 받으십시오.
저는 그 이후 확실히 낙원 가는 길을 알고 지금은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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