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법적용에도 우선순위가 있다.

하나님의 계명 중 무엇이 가장 중요한 계명인가?   마가12:28~31(렘31장에 예언된 마음에 기록하겠다는 법이 바로 아래나온다. 모세를 통해 체결된 구언약이 돌판과 양피지에 기록된것이라면 새언약이 요구하는 법은 각자의 마음에 기록한다. 이것을 통상 "사랑의법"이라고 부른다.)


So he asked: 
‘Then, which is the primary Commandment?’

29 And Jesus answered: 

"The primary one is this: Hear, O IsraEl; Jehovah your God is your only Lord. 30 So, you must love your God Jehovah with your whole heart, soul, mind, and strength. 31 The second one is this: You must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No Commandments are greater than these"



따라서 위에 표시된 두개의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이 없다. "No Commandments are greater than these" 어떤 계명도 이 두가지 계명보다  greater 한 (더 큰)계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점이 그리스도께서 지적한 것이다. 


위의 상위법과 하위법의 구분은 예수그리스도께서 하신것이다.  만일 첫째와 둘째의 순위를 바꾸면 어찌될까?  당연히 죄를 범하게될 수 있다. 아담의 경우는  하나님께 순종하는것보다 하와의 제안을 따르는것을 선택했다. 예수께서 첫째는~둘째는~이렇게 법의 순위를 언급 하신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러한 법의 우선순위를 뒤집으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솔로몬과 아담의 사례가 아내사랑을 하나님 사랑보다 우선시 함으로써 순위를 뒤바꾸면 어떻게 되는지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솔로몬은 토탈 천명의 부인들을 두었었다.  필자는 솔로몬이 "섹스중독증세"를 보였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돈이 많았다고 해도  솔로몬처럼 끊임없이 여자들과 결혼한 이유를 설명할 길은 "섹스중독" 밖에 없다.  솔로몬이 섹스중독에 빠졌기 때문에 솔로몬은 이교 우상신을 섬기는 부인들의 유혹에 굴복했다. 솔로몬은 자기가 하는짓이 우상숭배임을 알고 있었다.  왜? 솔로몬은 이교신을 숭배하는 부인들의 유혹에 굴복했을까?   부인들이 아스다롯이나 바알이나 몰렉신에게 바치는 리츄얼수행과 황홀한 밤을 연계시켜서 솔로몬을 타락하도록 유인했을까? 아마도 그런식으로 점진적으로 타락시켰을 것이다.   물론 성서는 그런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추리에 불과하다.  그래서일까?  솔로몬의 인장 이라고하는 헥사그램(성교숭상?)이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의 핵심 상징이 되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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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선 안식일 계명을 지키라는 명령을 어떤 관점으로 해석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다음과 같은 비유로 알려주셨다.  누가14장5절이다.

And he asked them: ‘If your son or your bull were to fall into a well on the Sabbath, which of you wouldn’t immediately go and pull him out?’  


안식일을 지키라는명령을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계명으로 인식하던 유대사회에서 그리스도의 비유는 상당한 충격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올바른 결론이었기 때문에 바리새인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과연 이같은 그리스도의 상위법 혹은 하위법 구분개념은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오늘날 여호와의증인들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피를 멀리하라"는 명령을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중대한 계명으로 받아들인다. 이들 신자들의 신념은 도대체 옳은것일까?  혹시 이들이 "피를 멀리하라"는 명령을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하나님의 법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은 혹시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대해 가졌던 신념과 비슷한 종류가 아닐까? 


‘If your son or your bull were to fall into a well on the Sabbath, which of you wouldn’t immediately go and pull him out?’

이것은 바리새인들이 갖고 있었던 안식일 관련 고정관념이 잘못된것임을 드러나도록 일종의 "예"로 말씀하신 것이었다. 사실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은 아이가 우물에 빠진날짜가 안식일 이라고할때 무시될 수 있는 계명이었을까?  바리새인들은 한번도 그문제를 심도있게 고려해본적이 없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안식일에 예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시는것을 보고 비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평범한 상황이 아니다. 아이가 우물에 빠져서 당장 구해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다.  아이의 생명을 구하는것은  안식일을 반드시 지키라는 것보다 우선순위일까?  어쩜 바리새인들도 자녀가 우물에 빠졌는데도 안식일이 라고 해서 방치할 거라고 말하고 계신걸까? 문장의 흐름상~ 예수께선 바리새인들 이라고 해도 즉시 자녀를 구할것이라고 말하고 계셨다.  따라서 안식일규정이 이웃을 사랑하란 명령과 상충되면 당연히 이웃을 사랑하란 명령을 우선시 해야한다.  왜냐하면 이웃을 사랑하란 명령은 하나님을 사랑하란 명령 다음(두번째로)으로 큰 법 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피를 멀리하라는계명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과 충돌할때는 도대체 무엇을 우선순위로 둬야할까?  피를 멀리하라는 법보다 더 큰 계명이 없다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을까? 결코 그런말 하신적이 없다. 당연히 "피를 멀리하라"는 법은 "이웃을 네몸 같이 사랑하라"는 법보다 "하위의 법"이다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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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위중하고 긴급한 상황 에서는  "피를 멀리하라"는 명령속에 들어 있는 개념이 훨씬 중대한 개념, 바꿔말해 네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 속에 들어 있는 개념 보다 덜 중요하며 당연히  하위의 개념이므로 상위의 법정신을 따라야 할것이다.  


마찬가지로 안식일에 강도가 침입하여 내아내와 딸을 납치 한다고 치자. 안식일이란 이유로 팔짱끼고 가만히 앉아 구경만 할 것인가? 위의 두경우 모두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는다는것은 누가봐도 올바른 행동이 아닐것이다.  아브라함은 롯과 그의가족이 납치되었다는소식을 접하고 어떻게 했는가? 아브라함은 자신의 식솔들을 데리고 납치범들을 추격한뒤 납치범들을 살해하고 롯과 가족을  구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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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네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은 어떻게 적용 해야 할까?  어느 어린 꼬마 소녀를 어느 나쁜 어른이 납치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했라고 해보자. 도대체 어떻게 하는것이 이웃사랑을 실천하는것일까? 꼬마소녀를 사악한 어른으로 부터 구출하는것이 우선일것이다. 사악한 어른을 이 경우에 예우 (사랑?)해줘야 할까? 나쁜 어른은 그런 심각한 악행을 저지를때 이미 들판에 있는 하이에나 혹은 사자처럼 행동하고 있는것이다. 악한사람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닌 행동을 하고있다. 이럴때 나에게는 총이있다 라고 해보자. 물론 납치범한테도 칼이있다라고 가정할때 납치범에게서 무죄한자를 구출하기 위해선 화력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물론 화력이 있고 납치범한테는 칼만 있다고 할땐 애시당초 싸움이 되지않는다. 그저 단순히 위협하는 선에서 납치되고있는 소녀를 구할 수 있을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피해자를 구하기 위해서 할 수 없이 납치범을 피치 못해서 살해했다라고 해보자.  이경우 유죄인가?  당연히 현행법에서도 무죄이다. 달리 말해서 납치범을 죽이는 불가항력적 상황이 발생해도 우선 피해자인 어린소녀를 구출해야 할것이다. 이런 경우에 예수께서 "겉옷을 달라고 하거든 속옷까지도 주라"고 하셨으므로 내아내와 내딸을 납치해가는 상황에서 그래 잘 데려가서 맘대로 강간하고 죽이라고 허용 해야할까?   독자는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나?  



혹자는 이런 주장을 할지 모르겠다.  성경에 보면 원수갚는것은 하나님께 맡기라고 했으므로 내힘으로 악인에게 보복하려 해선 안된다라고~ 악인에게 보복하려해선 안되기 때문에 내딸을 납치해가는 나쁜놈들을 내가 보고 있으면서도 아무조처를 취하지 말란 말일까?  


이런 추리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한번 생각을 해보시라.  내집이 나무로 만든집인데 한쪽 구석에서 불이났다 라고 하자. 가만 놔두면 홀라당 타버릴 위기의 순간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물어볼 필요도 없이 최선책을 강구해서 불을 꺼야 할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내아들이 지나가던 불독한테 공격받으면 그불독을 죽이는 상황이 발생할지라도 우선 아들을 불독의 입에서 구해야한다. 그렇지 않은가?  이와 똑같다. 아무리 우리가 사랑의 법 아래 있더라도 제3자가 관련된 경우엔 합리적으로 상황판단을 해야한다.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피를 40%이상 흘렸다라고 치자. 어떻게 해야할까? 당연히 수혈을 해서라도 아들을 살려내야한다. 그렇지 않은가? 지금 가만 놔두면 심장마비로 죽을지 모른다. 피가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럴땐 피를 멀리하란 사도행전의 법률이 멀리 도망가 버린다.  

지금상황은 중대한 위기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증인의 자녀가 교통사고를 당한 경우는 레위기의 유대인 사냥꾼의 상황보다 훨씬 더 정체절명의 상황이다.  그렇지 않은가?  


아버지가 수혈을 통해서라도 아들 생명을 구해주세요 라고 부탁했다 라고 해보자.  이런 아버지의 태도를 과연 하나님은 정죄하실까?


만약 당신이 섬기는 하나님이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정죄 한다면~ 당신은 매우 이상한 하나님을 숭배하는것이다. 이것은 매우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앗시리아 군사185,000명을 순식간에 죽이신 분이다. 그런데  왜? 20세 이상의 남자들로 된 이스라엘 군대를 조직 하셨을까?  


로마군인인 백부장 고넬료는 이방인 가운데서 사상최초로 성령침례를 받은 인물이다.  군인신분이 그를 정죄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고넬료를 선택하실 수 가 있었을까?  

따라서 군인신분은 하나님의 정죄대상이 아님을 알게된다. 


납치를 당하고 있는 어린소녀를 구출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데도 방관자처럼 행동한다는것은 지나가는 어느사람이 우물에 빠진 아이를 무시하고 지나간다는 이야기와 전혀 
다를게 없다.  그렇지 않은가? 

이런 말로서도 비유할 수 있다. 


남태평양에 어느곳에서 커다란 배에 타고 있던 어떤 개가 갑자기 바다에 빠졌는데 하필 그개를 노리고 전속력으로 백상아리가 다가오는것을 보았다.   틀림없이 백상아리는 그 개를 먹으려고 오는것이다.  이때 배위에 있던 개주인은 어떻게 해야할까? 당연히 개를 살리기 위해서 가지고 있던 총으로 백상아리를 향해 쏠것이다. 그렇게 해야 자기 개를 지킬 수 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기의 순간에는 남다른 특단의 조처가 필요해진다. 평소같으면 내가 상어보호를 외치는 동물애호가 일찌라도 바다에 빠진 나의 (개)를 잡아 먹으려는 상어를 절대로 가만히 놔둘 수 가없다. 이것이 합리적인 대응이다.


우리의 가족구성원을  악어나 사자나 하이에나가 맘대로 물어가서 뜯어먹도록 결코 허락할 수 없다.  그렇지 않은가? 이들 동물들은 결코해선 안되는 일을 하고있다.   이들은 이런일을 저지르는한은 사람이 아니다. 아니 사람인것을 포기했다. 그래서 현행법에서도 이들 현행 납치범들을 죽이더라도 무죄로 처리한다. 따라서 이웃사랑을 실천한다는 이유로 내가족을 포기한다는것은 말도 안되는 논리이다. 


그런데 이와 똑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엇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고있다.  


그것은 여호와의 증인신자들 사이에서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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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죽어가는 나의 아들이 교통사고의 충격으로 간이 손상되었다 라고 해보자. 이때 간이식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같은 병원에 간 이식용 으로 쓸 여분의 간이 없다라고 해보자. 그래서 의사가 그런다. 2시간내로 간이식을 하지 않으면 아들이 사망할 겁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그런다. 내간을 이식해서라도 내아들을 살려주세요. 난 이미 살만큼 살았고 아들을 대신해서 내가 죽고 아들을 살리고 싶습니다.  아빠의 간과 아들의 간 사이에 호환성이 있다고 판단한 의료진은 아버지의 간을 떼어내서 아들에게 성공적으로 이식한다.  이때 아버지는 간이 제거되고 그대로 생을 마감한다고 해보자.  자 독자 여러분! 이상황에서 여호와의 증인의 통치체는 신도들에게 뭐라고 가르치는지 아시는가? 놀랍게도 간이식은 해도된다 라고 가르친다. 간이식을 통해선 생명 연장을 시도해도 되지만 절대로 수혈만은 안된다는 것이다. 이게 도대체 말인지 당나귀인지 도대체가 ~어이가 없다! 성서는 이 문제를 뭐라고 할까?(요15:12-14)

12,"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것이니라. 13,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너희가 나의 계명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한 자기의 아들을 위해서 자신의 간을 떼어준 다음 생을 마감했다. 이것은 아버지의 사랑이 제대로 표현된 상황이다. 이것을 성서는 나쁘다라고 보는가? 아니면 사랑의 표현으로 보는가? 위의 성구는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셨다.  


《※아버지의 간을 떼어줬다는것은 아버지의 생명을 아들을 위해서 희생시킨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간 대신에 피를 줬어도 여전히 똑같다. 아버지는 자신의 피를 줘서 아들을 살려낸 것이므로 아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실천한 것이다!   성서는 피는 곧 생명 이라고 말한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 17:11)
※여호와의 증인의 어리석기 짝이없는 통치체는  피는 오로지 죄를 용서하는 데에만 사용되어졌기 때문에 다른 용도로 사용되면 안된다라고 가르친다. 그들의 가르침은 한발짝 더 나아간다. 만일 어떤 환자가 수혈을 통해서 생명을 연장하면 그리스도의 대속희생을 욕되게 하는것 이라고 가르친다. 이건 또 뭔소리일까?  여호와의 증인의 입장을 여기 옮겨본다. 독자가 판단해 보시라.  아래기사는 여호와의 증인의 온라인 기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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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여호와의 증인은 왜 수혈을 받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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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이것은 의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종교적인 문제입니다. 구약과 신약 모두에는 피를 멀리하라는 분명한 명령이 들어 있습니다. (창세 9:4; 레위 17:10; 신명 12:23; 사도 15:28, 29) 또한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피는 생명을 상징합니다. (레위 17:14)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그리고 생명의 수여자이신 그분을 존중하기 때문에 수혈을 받지 않습니다.ㅡby 여호와의 증인의 공식적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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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체의 주장대로 간이식을 통해서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는것이 합리적 태도라면 왜 피를 이식해서 (피를 의학에서는 하나의 기관"organ"이라고 표현한다)   아들을 살리는것이  안된단 말인가? 아들이 급성 백혈병이라면  "조혈모세포"를 이식만하면 살아날 수 있다. 더구나 조혈모 세포의 공여자가 죽는것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피가 부족해서(교통사고 환자의 경우) 죽어가는 경우에 피를 공급받으면 환자가  회생에 성공한다. 그런데 피의 공여자가 역시 죽지 않는것이다!  독자는 헌혈을 하다가 죽었다는 사례를 들어 보았는가?   위의 사례는 여호와의 증인의 통치체의 어이없는 수혈금지 교리에 대한 합리적 비판을 가하는 상황이어서 피를 아들에게 공여한 아버지가 사망한것으로 묘사한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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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앓고있는 병이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이라면 어찌해야할까?  이것은 희귀 혈액암 가운데 가장 고약한 암으로 꼽힌다. 성인의 생존율은 30% 정도다. 우리나라 전체 암 생존율 69.4%와 비교하면 아주 낮은 수준이다. 질환이 매우 빠르게 진행돼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쉽다. 절반 이상은 재발한다. 그러나 조혈모세포를 공여받으면 완치될 수 있다.  여호와의 증인의 통치체는 여기의 조혈모세포를 공급받는것은 수혈에 해당 하므로 안된다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오늘 전세계의 병원에서 여호와의 증인을 부모로 둔 "백혈병환자 자녀들"이 죽어가고있다.    이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여기 아래에 조혈모 세포에 대한 정보를 첨부한다. 만약 독자가 여호와의 증인이라면 제발 이기사를 다시 읽어보고 통치체의 교리의 비합리성에 대하여 눈을 뜨기 바란다.  그리하면 독자의 가까운사람이 혹시 절대로 그래선 안되겠지만 백혈병환자로 판명난 경우 살릴 수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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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혈모세포와 조혈모세포 이식이란?
조혈모세포(Hemopoietic stem cell)는 정상인의 혈액 중 약 1%정도에 해당되며 모든 혈액세포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진 원조가 되는 어머니 세포를 말합니다.
조혈모세포는 피를 만드는 어머니 세포로 온몸에서 발견되지만 골수에서 대량 생산되고 있으며, 혈액을 구성하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으로 분화됩니다.
기증자의 골수나 말초혈 조혈모세포는 기증 후 2-3주 이내에는 기증 전 상태로 원상회복이 가능하므로 기증자의 혈액세포 생성능력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습니다.
조혈모세포 이식은 백혈병이나 암 환자에 적절한 시기에 이식을 하여 새 생명을 얻게 하는 치료행위입니다.
조혈모세포의 조직적합성 항원 일치 확률은,
조혈모세포 이식은 환자와 기증자의 조직적합성 항원형(HLA type)이 일치하여야 하는데,
환자와 기증자간 HLA형이 일치할 확률은 부모와 자식간 5% 이내, 형제자매간 25% 이내, 타인간 일치할 확률은 수천에서 수만명 중 1명에 불과할 정도로 확률이 매우 낮습니다.
이에 따라, 조혈모세포 기증희망자 등록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등록하여야 환자가 이식받을 확률이 높아지게 됩니다.
조혈모세포 관리의 법적근거
법적 근거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 「암관리법(제11조의 3 비용지원)」,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제24조)」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4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장기등”이란 사람의 내장이나 그 밖에 손상되거나 정지된 기능을 회복하기 위하여 이식이 필요한 조직으로서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것을 말한다. 가. 신장 · 간장 · 췌장 · 심장 · 폐 나. 골수 · 안구 다. 그 밖에 사람의 내장 또는 조직 중 기능회복을 위하여 적출 · 이식할 수 있는 것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 ※ 동법 시행령 제2조(장기등의 정의) –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이란 췌도(膵島) 및 소장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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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선 친구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다.  사실 예수께선 친구 뿐만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다. 

(더구나 그처럼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행동을 "사랑의 표현" 이라고 부르셨다.) 
(요15:13)"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따라서 아버지가 자신의 친구는 아니지만 아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 행동(자신의 간을 떼어 준 행위)은 "명백한 사랑"의 표현이다.  이런 결론이 논리적이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자신의 목숨과 자기 아들의 목숨을 맞바꾼 것이다.  그럼 이상황을 이렇게 정리해보자.  이제 아버지가 아들에게 간을 준것이 아니라 피를 주었다라고 해보자.

피를 준 이유는 해당병원에 호환되는 피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자신의 피를 주었다. 왜냐하면 같은 O형 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빠의 피를 주다가 어떻게 된 일인지 아빠가 심장마비로 죽었다 치자.  그럼 아들을 살릴려다가 아빠가 희생당한 상황이 되어 버린다. 그럼 좀전의 상황과 똑같게 된다.  아까는 간이 없어져서 아버지가 죽은것이고 이번에는 아버지의 몸에 피가 부족해서 죽은것이다. 결과는 똑같다. 

두경우 모두 아들은 살아났고 아버지는 두경우 모두 사망했다. 

자 이런 상황을 전제로 깔고 판단해 보시라! 

자 이제 보이시는가?  얼마나 여호와의 증인의 통치체가 어이없는 교리를 신도들에게 강요하고 있는지가? 간이식의 경우는 허용되고 피의 이식 (수혈)만은 안된다는 것이다. 더이상 말을 말자. 다른사람의 생명을 구제하려고 제3자가 사망한 사건이 뭘까?  다른사람의 생명이 한개라면 그리고 그 생명의 가치가 좀 더 높다고 한다면 그러한 희생은 나름대로 이웃사랑을 실천한 것으로 봐야한다.  가령 예를 들어서 악어에게서 어린 소녀를 구하려다가  어른은 죽고 아이는 살려낸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경우를 성서가 정죄할 거라고 보는가?

위의 성구가 그점을 보여준다.  이런 제반 상황을 고려해보고 우린 이해하게 된다.  여호와의 증인의 통치체의 어리석은 교리가 얼마나 허망한지를~ 그리고 얼마나 사악한지를~ 사람들은 필자의 주장을 지나치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필자왈 여호와의 증인은 자기 자녀를 불에 살랐던 가나안인들과 다를게 없다란 것인데 이말이 지나치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전혀 지나친게 아니다.  여호와의 증인 조직은 모르긴해도 배교하고 반역한 이스라엘인들 보다 훨씬 많이 자기자녀를 불살라 (죽여)왔을 것이다!!!(불살랐다 란 말을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마침표 꽉.


여호와의 증인의 부모가 자기자녀의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수혈거부 입장을 취하는것을 아래와 같이 비교할 수 있다. 


※어떤 미친?종교인이(광신자)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 때문에 자신의 딸 아이를 납치해가는 나쁜놈들을(딸아이를 물고가는 악어를) 보고서도 아무조처도 취하지 않는것과 다름이 없다. 딸 아이가 납치당한 뒤에 망연자실 해있는 아이의 아빠에게 이웃사람이 물어본다. 왜? 가만히 손놓고 구경만 했어요?  그러자 그 아버지가 이렇게 대답한다.  성경에 하나님의 법이 나와요.  그 계명이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 조처도 취하지 않은겁니다. "하나님의 법"이거든요!  헐! 그러자 이웃사람이 이렇게 대답한다. 헐! 거기서 이웃은 누구입니까? 납치범입니까? 아니면 당신의 딸입니까?  당신 완전히 미쳤군! 미쳐도 아주 단단히 미쳤어! 도대체 이게 말이 된다고 보시나?  이런 상황과 별다를게 없다. 하나님의 법 운운하면서 사람들을 죽인다니~



여호와의 증인인 어느 신자의 딸이 피가 부족해서 혹은 백혈구를 잡아먹는 몸쓸 상황이 딸아이의 몸속에서 진행중인데 이 문제를 처리하려면 수혈(조혈모 세포 이식) 밖에 없다.  어떻게 해야할까? 당연히 수혈을 통해서라도 아이를 살려내야한다.  아무리 다양한 상황을 나열한다고 해도 항시 결론은 같다.  일단 생명을 구하고 봐야 한다. 이것이 올바른 대응법이다.


그것이 바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위기가 닥치면 더 중요한 개념을 따라야 한다.  따라서 사냥을 나갔다가 오랫동안 음식을 먹지 못해서 기진맥진한 상황이 되면 가시덤불에 뿔이 걸린채로 죽어있는 사슴을 보면 불에 구워서  먹을 수 있을것이다. (아마도 당연히 먹어야 할것이다.) 설령 (피째 동물의 고기를 먹는 행위)이런 행동을 모세율법에서 정죄하고 있어도 그러하다. 그점이 레위기 17장의 기록이다. 

《※이기록은 위기의 순간에 동물의 사체의 피를 먹을 수 있으며, 그 피의 힘에 의존해서 생명을 연장해도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어떤 명령들은 설령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나왔어도 위기시에는 더 중요한 개념보다 하위의 개념을 반영하는 명령인 경우에 순식간에 무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점을 예수께서 가르치셨다. (참조 누가14:5)   사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두개의 가장 중요한 계명은 다른 모든 계명 이를테면 피를 멀리하라! 혹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지말라! 목메어 죽은것을 멀리하라! 와 같은 법(행15장참고)보다 항상 (Unit)으로서 상위에 있다. 그렇지 않은가?  


물론 그(Unit)안에서도 상위와 하위의 위치가 엄연히 존재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예수께서 이렇게 지적 하신바와 같다. 

"There is no commandment greater than these." 


따라서 피를 먹지마라! 혹은 피를 멀리하라! 와 같은 법은 당연히 위에 설명한 상위의 법보다 "greater"할 수가 없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이다. 

따라서 매우 위중하고 긴급하며 생명이 존폐의 기로에 있을때는 수혈을 통해서라도 일단 환자의 꺼져가는 생명을 살려야 할것이다.  그래야 환자를 수술실까지 운송할 시간도 벌고 기타 수술 관련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기서 혈액을 대체하는 물질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있는 상황을 전제로 깔고 논의를 하고 있는것이 아니다.  매우 위급한 상황을 전제로 논의를 하고있다.)  


성서는 그와 같은"view point"를 한 점 의혹 없이 밝혀준다!   따라서 도저히 교통사고로 인해 몸안의 피가 40%이상 빠져나가서 도저히 다른방식으로 살릴 가능성이 없는데 유일하게 수혈을 통해서만 회생시킬 수 가 있다면 수혈을 통해서라도 일단 꺼져가는 소중한 생명을 살려내야 한다. 그점이 예수님의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속에 들어있는 교훈이다.

(자비와 공의를 추구하라는 정신이다.)

마태12장7절엔 예수님의 말씀이 나온다.  


"And if you understood what the words mean, I want mercy, not sacrifices, you probably wouldn’t be condemning these innocent ones."  

  "피를 멀리하라" 는 명령은 "이웃을 사랑하라"  는 명령보다 당연히 하위의 명령이다. 그렇치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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