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은 쓸모가 없다는 말은 무슨뜻일까?
이번기사의 주제는 요한복음6:63절의 이해다. 필자의 생각의 흐름에 따라 자유롭게 기사를 쓸 예정이다. 이번기사 역시 필자의 주관적 관점을 적은것이므로 독자들의 기존[관념]과 상충된다고 하여 발끈할 필요가 전혀없다. 필자가 이번기사를 쓴 이유는 요한복음 6:63절의 표현을 보고 [육체는 아무 쓸모가 없]으므로 모든 크리스챤이 하늘나라로 올라가서 사는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육체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필자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를 적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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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성구는 메시아의 말씀의 복사판이다. 사도바울은 로마서에 ['육의 생각들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하면서 극단적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고 말한다. 극단적 결과란 [죽음]을 의미한다. 반면에 영의 생각들은 생명과 평화를 가져온다. 따라서 사도바울은 요한6:63절에 나온 주님의 표현과 동일한 표현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요한복음을 읽고나서 카피했을 가능성은 아얘없다.
요한6:63절의 이해를 위한 열쇠가 로마서 8장 6절에 들어있다.
(로마서8:6절)Indeed, the thoughts of the flesh bring death, while the thoughts of the Spirit bring life and peace. (*"실로, 육의 생각은 죽음을 가져오고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화를 가져옵니다.")
요한6:63절만을 독립적으로 읽은사람이 요한6:63절의 내용을 이해못한 경우에 로마서8장을 읽고나서 다시한번 63절을 읽어보면 이해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요한6:63절에는 3개의 문장이 들어있는데 해설가들이 해석상의 난해함을 느끼는 문장은 두번째 문장이다. 그것은 ["육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이다.
일부번역이 ["육은 아무 도움이 안된다"]라고 번역했다. 바로 이문장 때문에 해설가들의 의견이 갈리게 된다. 따라서 이문장을 올바로 이해하고 해석하려면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게 하라']는 원칙에 따라 로마서8:6절이 요한6:63절을 해석하게 만들면 의외로 손쉽게 해독할 수 가 있다.
물론 사도바울은 요한복음서를 읽지 못하고 순교 당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의 순교는 기원67년경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요한복음은 기원95년 전후에 아람어로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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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6:63절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절차
1)요한6:63절의 올바른 번역을 찾아낸다.
2)문맥을 철저히 분석한다.
2)올바른 번역을 해석하되 성경과의 [내부적조화]가 가능하게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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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비교
Juan:6:63(카도쉬역)
[63] El Ruaj es el que da vida; la carne no es de ayuda. Las Palabras que les he hablado a ustedes son Ruaj y Vida, ["영이 곧 생명을 주는것이다. 육은 도움이 안된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이 곧 영(프뉴마)이고 생명이다"]
(Juan 6:61~63) Biblia Martin Nieto
61. Jesús, conociendo que sus discípulos hacían esas críticas, les dijo: '¿Esto os escandaliza?
62. ¡Pues si vierais al hijo del hombre subir adonde estaba antes!
63. El espíritu es el que da vida. La carne no sirve para nada. Las palabras que os he dicho son espíritu y vida.["생명을 주는것은 영이다. 육은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말이 영이고 생명이다."]
정통유대교성경(요한6:63)
63. El Rúax es el que da vida; el basar nada aprovecha: las palabras que yo os he hablado, son rúax, y son vida. ['영이 곧 생명을 주는것이다. 육은 소용이 없다. 내가너희에게 한 말이 영이고 생명이다.']
Ruax=spirit
basar=flesh=carne
vida=life
아람어역 (요한6:63)
63 It is The Rukha {The Spirit} who makes alive; the body doesn’t profit a thing. The Words which I speak with you, are Rukha {Spirit} and are Khaye {Life}.[*살아있도록 만드는것은 영이다. 몸은 기여하는게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이 곧 영(프뉴마)이고 생명이다"]
페시따역 (요한6:63)
63. El espíritu es el que da vida; la carne para nada aprovecha. Las palabras que yo les he hablado son espíritu y son vida ["생명을 주는것은 영이다.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이 곧 영(프뉴마)이고, 생명이다"]
《John 6:63》Modern English Version (MEV)
63 It is the Spirit who gives life. The flesh profits nothing. The words that I speak to you are spirit and are life. ["생명을 주는것은 영이다.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이 곧 영이고, 생명이다"]
아래는 mounce 희랍어 행간 번역이다.
예루살렘역
63. El espíritu es el que da vida; la carne no sirve para nada. Las palabras que os he dicho son espíritu y son vida. [*생명을 주는것은 영(프뉴마)이다.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이 곧 영(프뉴마)이고 생명이다.]
요한복음 6:63 Korean Living Bible (KLB)
63 [a]생명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며 인간의 육체는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b]영적인 생명에 관한 것이다.
요한6:63 (NWT)
63 생명을 주는 것은 영입니다. 육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입니다.
번역판들이 대동소이하다. 세개의 문장이 나오는데 가운데 나오는 표현이 번역판마다 차이가 날 뿐이다. 첫번째와 세번째 문장은 모든 번역판이 거의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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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직접 풀어보시라.
질문)도대체 [Yahushua/예수]께선 제자들에게 무슨의미로 [생명을 주는 것은 영입니다. 육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입니다.]라고 말씀하신 것 일까요?
1번해석)메시아의 살을 먹으라는 얘기는 실지로 그렇게 하란 얘기가 아니다. 유대인들에게 "식인종"이 되라고 말한게 결코 아니었다. 설령 그들이 메시아의 살을 문자적으로 먹더라도 그것은 그들에겐 아무 쓸모가 없을것이다. 왜냐하면 메시아의 말씀은 비유적으로 자신을 먹으라고 말씀한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생명]을 주는것은 [영]이지 알레고리적인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육은/아무/소용이/없다']는 말은 앞의 말과 연계해서 이해해야 한다. (제3자적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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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해석). 너희가 인자의 살을 씹어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는 영생이 없다고, 내가 너희에게 말했다.
그말을 들은 너희는 내말을 야만스럽게 육적인 관점으로 받아들였다. 마치 내가 너희에게 식인종들처럼 내몸을 마치 양고기를 나눠먹듯이 실제로 너희끼리 나눠 먹으라고 말한것으로 이해한다. 확실히 너희는 영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육적인 사람들이다. 그래서 너희는 내말을 육적인 관점으로 야만스럽고 포악하게 이해한다. 그런 육적인 시각으로 내말과 하나님 아버지의 마련을 이해하는것은 너희에게 아무 쓸모가 없다.
너희가 보기에 내가 내[살]을 온세상을 위한 [영적인 음식]으로 만들지 못할것 같으냐? 내말이 곧 [영]이고 [생명]이란 사실이 안보이느냐? 너희가 영적인 시각으로 내말을 믿으면 하나님의 마련의 실체를 이해하게 될 것이고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될 것이다. 난 내살과 내피를 영적인 빵과 영적인 음료로 세상에 제공하기 위해 하늘로부터 내려왔다. 만일 이런 영적인 마련들을 영적인 시각으로 너희가 이해하고 분별하고 나를 믿게되면 너흰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메시아께서 이런 취지로 말씀하셨을 것이다라는 추정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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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해석) 나는 너희에게 내살을 먹고 내피를 마시는자는 영생을 갖게될거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생명의 근원이시다. 아버지는 영존하신다. 그 영원한 생명을 아들에게도 주셨다. 아버지는 [세상의 목숨]을 살리기위해 날 내려 보내셨다. 난 하늘로부터 내려온 영원한 생명을 주는 빵이다. 따라서 날 먹는자는 결코 죽지 않을것이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내 안에 있고 내가 아버지안에 있는것처럼 나를 먹는자안에 내가 있고 또 그가 내안에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살을 먹고 내피를 마시는자는 내가 [마지막날]에 [부활]시켜서 다시는 죽지 않도록 만들것이다. 이모든 하나님의 마련을 너희가 육적인 시각으로 이해해서 너희가 걸려 넘어진 것이다. 너희가 내말을 듣고 걸려넘어진것은, 내살과 내피가 보통사람의 피와 살이 아니란 사실을 전혀 믿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는 내아버지가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그안의 모든것을 만드신 [창조주]임을 믿지 않는다.
나는 아버지가 세상을 구하기위해 하늘로부터 내려 보내신 [대속희생물]이다. 내살은 너희의 죄를 항구적으로 용서하고 없애는 파워가있는 신성한 것이다. 그래서 내살과 피를 먹는자에게는 영생을 주는 힘이 있다.
만일 내살이 보통남자의 것이라면, 당연히 그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될것이다.(*쓸모가 없을것이다!)
내말은 영이고 생명이다. 왜냐하면 내가 하는 말들은 모두 내말이 아니고 아버지로부터 들어서 너희에게 전한 말이기 때문이다. 난 아버지가 전하라고 하신 말씀을너희에게 전한다. 내말이 곧 아버지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내말이 [진리]이고 [생명]이다.
[메시아께서 이런 취지로 말씀하셨을 것이다라는 추정적 해석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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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해석)['육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은 메시아의 모든 제자들은 앞으로 [천국]에 올라가서 살게 될 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에 가면 [육체flesh]는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ㅡ[제3자적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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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해석)육체가 [호흡]이 없다면 죽은것이고 호흡이 없는 죽은 육체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한것이다. 호흡이 없는 육체는 아무 쓸모가 없다. 실제로 [프뉴마]는 "호흡"으로 번역될 수 있다. 게다가 몇몇 번역은 요한6:63절의 첫문장의 [프뉴마]를 [호흡]으로 번역했다. ㅡ[제3자적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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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독자는 1번해석부터 5번해석 사이에서 무엇이 올바른 해석인지 "분별"할 수 있는가?
요한6:63
['생명을 주는 것은 영입니다. 육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입니다']
위의 문장은 지난1500여년간 해설가들 사이에 무슨의미인가를 놓고 열띤 논쟁을 벌인 몇몇 문장중에 하나다.
답변)결론부터 말하자면 [2번해석]과 [3번해석]은 둘다 내부적으로 조화되는 해석이다. 그러나, [1번해석]은 많은 기독교인들이 선호하는해석이지만 필자가 보기엔 문제가 많은 해석이다. [4번해석]과 [5번해석]은 전혀 말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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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해석의 분석
먼저 [5번해석]부터 분석한다. 왜냐하면 [5번해석]이 가장 "분석"하기 쉽기 때문이다.
일부 성서해설가들이 [5번해석]이 맞다라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2001역 번역팀인데 이들은 그런 의미라고 생각돼도록 요한6:63절에 관련 단어를 첨가했다. 아래에 2001역을 첨부한다.
63 ‘[Understand that your] breath is what makes you alive, for [without it], the flesh is useless. And these things that I’m telling you are your life and your breath… 64 yet, some of you still don’t believe.’
[호흡이 너희를 살아있게 한다는 점을 이해하라. 그것 없이는 육체는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지금 너희에게 하는 말이 곧 생명이요 호흡이라. 그러나 너희 가운데 몇몇은 믿지 않는다.]
이번역은 대다수의 번역과 매우 다르다. 독자들은 위에 나온 여러 번역판과 대조해 볼 수 있다.
필자는 메시아께서 [호흡이 없는 육체는 죽은것이므로 아무 소용이 없다]라고 말씀하신것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말은 곧이어 나오는 말과 조화가 안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너희에게 하는 말이 곧 [영]이요 [생명]이라."]이말은 내가 하는 말을 믿으면 너희 안에 생명이 있게 된다는 말이다.
다시말해 ["영생이 너희 안에 있게 하려면 내말을 믿어라"]라고 말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말 이후에 즉시 ["그러나 너희 가운데 얼마는 믿지 않는다"]라고 "표현"하신 것이다. 이런 맥락으로 볼때 메시아께선 [생명을 주는것은 영이지 육이 아니다.]란 취지의 말씀을 하신것으로 보인다. ["육체는 쓸모가 없다"]는 것은 생명을 주는일에 도움이 안된다는것이지 [육체는 쓸모가 없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을리가 없다. 왜냐하면 요한복음6장엔 반복적으로 ["당신의 육체를 씹어먹는자는 영생을 얻는다"]고 말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육은 소용이 없다는 말을 메시아의 [육체]로 이해하면 완전히 [상충]되게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메시아께선 [일반적인 육체]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신것일까? 이런 관점도 어이가 없다. 왜일까? 왜냐하면, 창세기1~2장을 읽어보면 모든 생물들을 만드신 이후에 두분이 심히 좋았다고 표현하셨기 때문이다. 모든 땅위에 거하는 생물들은 기본적으로 육(flesh)을 갖고 있다. 따라서 만일 일반적인 ['육체는 도무지 쓸모가 없다']란 취지의 말씀을 하셨다면, 우리의 육체도 전혀 쓸모가 없는것이 될 것이다. 그리되면 [육체]를 어떻게 하란 말인가? 메시아께선 과거에 하나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하신분이시므로 육체를 갖고있는[생물들]을 직접 [창조하신분]이라고 이해할 수 밖에 없다. (골로세서1장참조)
따라서 일반적인 육체가 소용이 없다는 취지로 말씀하셨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호흡이 없는 육체는 죽은것이므로 쓸모가 없다? 라고 말씀하신 거라면 야고보서2장26절에 있는 말씀을 하신것인데 거기에 보면 [거의/같은말]이 나온다. 아래의 두번역은 [프뉴마]를 [영/spirit]으로 번역해서 영이 없는 몸이 죽은것과 같다고 번역했다. 그러나 2001역은 [호흡]으로 번역했다.
야고보2:26
Korean Living Bible (KLB)
26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처럼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2001역 (야고보2:26)
26 So, just as a body that isn’t breathing is dead, faith without good deeds is dead.
과연 그럴까? 메시아께선 지금 [자신을 믿어야 너희가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주제로 말하고 계시다. 바꿔말해, 자신에 대한 [믿음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계신것이다. 게다가 [프뉴마/루아흐]가 없는 육체는 쓸모가 없다 혹은 [루아흐]가 없는 육체는 도움이 안된다 라고 말하신 거라면 그리고 [루아흐]를 코로 숨을 쉬는 [호흡]의 의미로 사용하신거라면 누구나가 알고있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신 셈이다. 물론[루아흐]나 [프뉴마]가 일반적인 [호흡]을 의미하는 말로 번역될 수 있다. 그러나 그단어는 일반적으로 [Spirit] 으로 흔히 사용되는 희랍어이다. 그렇다면 왜? 메시아께선 [육은 도움이 안된다] 혹은[육은 쓸모가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일까?
문맥을 보면,메시아께선 [프뉴마]혹은 [루아흐]를 두번 사용하셨다. 그러므로 [Yahushua/예수]께서 강조하신것은 호흡을 하지않는 육체는 쓸모가 없다는 의미로 말하신게 아니다. 왜냐하면 호흡이 없는 육체는 죽은거란 사실을 모든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메시아께선 생명을 주는것은 [호/푸뉴마/the spirit]라고 말하심으로써 [영/spirit]이 곧 [생명]을 주는거란 사실을 강조하신것이다. 다시말해 ['생명을 주는것은 영이지 육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대조법]을 사용하셨다.
실제로 이런 대조법이 로마서8장6절에 나온다.
로마서 8:6 Korean Living Bible (KLB)
6 육적인 생각은 죽음을 뜻하고 영적인 생각은 생명과 평안을 뜻합니다.
베뢰안성경 (롬8:6)
6For the mind of the flesh is death; but the mind of the Spirit, life and peace,
아람어성경 (롬8:6)
6 For, the mind of the flesh is death, and the mind of The Rukha {The Spirit} is Life, and Peace.
ܡܛܠ ܕܬܪܥܝܬܐ ܕܒܣܪܐ ܒܥܠܕܒܒܘܬܐ ܗܝ ܠܘܬ ܐܠܗܐ ܠܢܡܘܣܐ ܓܝܪ ܕܐܠܗܐ ܠܐ ܡܫܬܥܒܕܐ
ܡܛܠ ܕܠܐ ܡܫܟܚܐ
페시따역 (롬8:6)
6. porque la forma de pensar que es de la carne es muerte, pero la manera de pensar que es del espíritu es vida y paz,
(2001역)로마서8:6
6 Indeed, the thoughts of the flesh bring death, while the thoughts of the Spirit bring life and peace. (*"실로, 육의 생각은 죽음을 가져오고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화를 가져옵니다.")
놀랍게도 로마서8:6절은 요한복음 6:63절의 1번과 2번의 문장과 거의 흡사하다. 쉽게 대조해 볼 수 있도록 여기에 페시따역(요한6:63절)을 다시한번 첨부한다.
63. El espíritu es el que da vida; la carne para nada aprovecha. Las palabras que yo les he hablado son espíritu y son vida ["생명을 주는것은 영이다.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이 곧 영(프뉴마)이고, 생명이다"]
아래는 REV역이다. (로마서6:63)
63It is the spirit that gives life; the flesh profits nothing. The words that I have spoken to you are spirit, and are life.(*생명을 주는것은 영입니다. 육은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한 말들이 곧 영이고, 생명입니다.)
(로마서8:6절)Indeed, the thoughts of the flesh bring death, while the thoughts of the Spirit bring life and peace. (*"실로, 육의 생각은 죽음을 가져오고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화를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과 비슷하지만 약간 더 구체적으로 사실적 표현을 써가면서 로마서8장6절에 설명한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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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해석의 분석
4번해석)['육은/도움이/안된다'] 혹은 [육은/아무소용이/없다]는 말은 메시아의 모든 제자들은 앞으로 [천국]에 올라가서 살게 될 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에 가면 [육체/Flesh]는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식으로 해석하는 기독교의 목사들과 선교사들이 있다. 메시아의 모든제자들이 물론 하늘나라(천국)에가서 살면 좋겠으나 그것은 비성경적인 개념이다. 성서는 모든 메시아의 제자들이 천국에 올라가서 영자로 살게 될 거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로지 어린양의 신부로서 하나님의 왕국에서 왕겸 제사장으로서 봉사할자들이 일차적인 대상이다. 두번째 대상은 계시록15장에 살짝 언급되는데 필자는 이들이 신부들과 어떤차이를 갖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호기심을 느끼는 독자를 위해 관련성구를 첨부한다. 이구절은 유리바다옆에 서있는 짐승과 그것의 형상을 이긴자들에 관해 묘사한다. 이들도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거문고]를 들고있다.
계시록15장
2And I saw something like a sea of glass mixed with fire, beside which stood those who had conquered the beast and its image and the number of its name. They were holding harps from God, 3and they sang the song of God’s servant Moses and of the Lamb:
“Great and wonderful are Your works, O Lord God Almighty! Just and true are Your ways, O King of the nations! 4Who will not fear You, O Lord, and glorify Your name?
For You alone are holy. All nations will come and worship before You, for Your righteous acts have been revealed.”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거문고는 계시록14장에도 언급된다. 그러나 14장의144,000명이 서있는 장소와 계시록15장의 유리바다옆에 서있는자들의 위치 묘사가 완전히 다르다. 게다가 계시록15장에 묘사된 짐승에게 이긴자들은 몇명인지 그 숫자도 알려주지 않는다. 또한 15장에 묘사된자들은 이마에 어린양과 하나님의 이름이 없다. 만일 이들이 계시록14장의 144,000명과 같은 사람들이라면 그에 관한 힌트가 나올텐데 그에관한 뚜렷한 힌트가 없다. 오로지 하프가 나온다. 두경우 모두 하프를 갖고서 노래를 한다. 그러나 계시록15장에 묘사된 노래는 계시록14장에 묘사된 노래와 다르다.
계시록14장
1Then I looked and saw the Lamb standing on Mount Zion, and with Him 144,000 who had His name and His Father’s name written on their foreheads. 2And I heard a sound from heaven like the roar of many waters and the loud rumbling of thunder. And the sound I heard was like harpists strumming their harps.
게다가 계시록15장은 유리바다옆에 서있는 자들이 모세의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묘사] 직후에 일곱개의 [금대접]이 땅위로 순차적으로 쏟아진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여덟째왕이 [짐승의표]를 받지 않은자들과 야수의 형상 앞에 절하지 않은자들을 [킬링]한 다음에 [대접재앙]이 순차적으로 쏟아짐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여덟째왕]이 살해한자들을 하나님이 먼저 부활시켜서 하나님이 계시는 [영역]에 있는 [유리바다옆]으로 이들 순교당한자들을 부활시켜 끌어 올리셨단 의미일까? 계시록15장의 뉘앙스가 실제로 그러하다! 만일 그렇다면 144,000명에 포함되지 않는 순교당하는 사람들도 부활된 이후에 하늘로 올려진다는 의미일까? 필자는 지극히 주관적으로 계시록15장을 읽어보고 그렇게 이해했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계시록19장의 중요 표현 때문인데 다음과 같다.
계19;9
9And he says to me, “Write, ‘Blessed are those having been invited to the supper of the marriage of the Lamb.’” And he says to me, “These are the true words of God.”
만일 우리의 이해가 맞다면 [하늘영역]으로 끌어올려지는 사람들은 [두반열]이다. 한반열은 어린양의 [신부]이므로 당연히 어린양의 결혼식에 참석해야 한다. 또 다른 반열은 어린양의 결혼식의 피로연에 [초대받은자들]이다. 하나님은 천사를 시켜서 ['어린양의 결혼식의 식사자리 (피로연)에 초대받은자들은 복되다!']라고 하시면서 그 말을 ["기록하라!"]고 하셨다. 따라서 우린 어린양의 결혼식 피로연에 초대받는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 수 있다. 게다가 우린 어린양의 [결혼식]이 하나님이 계시는 장소에서 일어날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지극히 논리적으로 어린양의 결혼식의 피로연도 하나님이 계시는 영역에서 혹은 그 근처에서 일어날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린 [두반열]이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특별한 이벤트]에 참석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어린양의 결혼식의 피로연(식사자리)에 초대받은자들이 계시록7:13~14절에 묘사된 [큰환난]에서 나오는 [큰무리]인지 확실히 모른다. 만일 [큰환난]에서 나온 [큰무리]를 모으시는 목적이 결혼식 참관과도 연계돼어 있다면 당연히 하늘로 올려질것이다. 아뭏튼, 계시록7장만 검토해보면 [큰무리]가 하늘에서 영원히 살거란 [뉘앙스]를 감지하지 못한다.
만일 계시록11:12절에 묘사된 [두증인]이 어린양의 [신부]와 결혼식 피로연(식사)에 초대받은자들이라면 당연히 계시록7장12~14절에 나오는 [큰무리]도 하늘로 가게 될 것이다. 지극히 논리적으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무리]는 어린양의 피에 겉옷을 빨아 하얗게 만든자들이 아닌가? 따라서 [큰무리] 역시 어린양의 결혼식의 [식사자리]에 초대받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도 이상하지가 않다.
[큰무리]가 아무리 큰 숫자의 사람들이더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하늘로 혹은 하늘근처로 이동시키는것은 눈깜짝할 사이에 가능할것이다. 하나님은 우주역사에 다신 반복돼지 않을 [결혼식이벤트]를 [참관자들]이 없이 하시진 않을것이다. 논리적으로 결혼식 식사 자리에 초대받은자들은 결혼식 역시도 참관할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계시록19장엔 결혼식이후 [식사]에 [초대받은자들]에 관해서만 말한다.
어린양의 혼인식을 참관한자들에는 일차적으로 엄청난 숫자의 천사들이 있다. 둘째로는 땅으로부터 올려진 엄청난 숫자의 메시아의 제자들 다시말해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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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란 용어를 잘못 이해한다. 특히( JWS교)가 잘못 이해한다.
그들은 예레미야31장에 나온 [이스라엘]과 [유다]란 용어를 [영적이스라엘]이라고 가르침 받는다. 바꿔말해 하나님이 새계약을 체결하는 당사자로 이스라엘과 유다를 지목했는데 이것은 [영적이스라엘]로서 하늘로 가는 [144,000명]이라는 것이다.
사실 성서엔 [영적이스라엘]이란 표현이 안나온다. 그것은 [JWS]의 통치체가 지어낸 용어다.
아뭏튼 예레미야31장의 이스라엘은 갈라디아6장의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다. 이들은 처음엔 태생적 유대인들로만 채워졌으나 기원36년 이후부턴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충원되기 시작했다. 이들이 바로 새계약의 당사자다. 예레미야 31장 어디에도 새계약의 당사자를 144,000명이라고 말한적이 없다. 오히려 디모데전서는 [모든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JWs교]는 사탄이 세운 종교답게 그[교리]를 무기로 여증신자들에게 [일사분란]하게 주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표상물을 거부하는 행사를 연례적으로 거행한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어린양의 [신부]가 아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144,000명이 아니다.
어린양의 신부는 하나님의 이스라엘 가운데서 선택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규모는 어린양의 [신부규모]보다 훨씬 크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매년 오순절에 하나님께 바쳐진 두개의 누룩이 든 빵으로 전영됐다.
누룩이든 두개의 빵은 기원33년 오순절에 실제로 예루살렘에 나타났다! 첫째빵은 기원33년 오순절의 오전에 [성령침례]받은 120명이었다! 또다른 빵은 그날 오후에 [물침례]받은 3,000명의 유대인들이었다!
따라서 두개의 빵은 전부 다 아브라함의 육적 후손들로 구성됐다.
이들 [두무리]가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초기멤버]다. 반드시 보리수확의 첫단을 [요제]로 하나님앞에 흔든다음 그로부터 50일째 되는날에 누룩이든 [두개의 빵]을 매년 바쳤다.
따라서 기원33년 오순절에 일어난 두가지 사건은 두개의 누룩든 빵이 하나님께 바쳐진것임을 의미한다. 두개의 누룩든 빵의 의미를 [여호와의 증인교]는 한개는 유대인을 의미하고 또 한개는 이방인을 의미한다고 가르친다. 필자는 이가르침 역시 [잘못된 가르침]으로 본다.
제사직 마련이 생길 당시부터 이마련이 지속해왔기 때문에 애초부터 [유대인+이방인]으로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구성시킬 계획이었다면 [제사장나라]혹은 [특별한소유]로 [이스라엘]을 "사용"하겠다는 하나님의 [천명]은 [거짓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방인]은 두개의 빵중에 들어갈 수 없다.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이스라엘로 받아들여진것을 [올리브나무]에 [접붙인것]으로 비유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로 이뤄진 새로운 [올리브나무]를 심으신게 아니라 원래있던 [올리브나무]에 개종한 이방인들을 [접붙인것]이었다. 사도바울의 이표현 역시 두개의 누룩든 빵이 [이방인]을 의미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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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는 올리브나무
기원33년오순절로부터 [3년반]뒤에 이방인이었던 고넬료와 친구들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이들 고넬료와 친구들이 바로 요한10:16절에 나온 우리 밖에 있던 [다른양들]이다. 요한10:16절에 나온[다른양]은 여호와의 증인교의 설명처럼 땅에 앞으로 살게될 [큰환난]에서 나오는 [큰무리]가 아니다! 그 가르침은 "헐"소리나는 비성경적 개념이다. 왜일까?
왜냐하면 [JWs교]의 통치체는 그 [우리/fold]를 설명할때 [우리/fold]내부에 있는자들은 [적은무리]로써 하늘에서 왕겸 제사장으로 봉사할144,000명이 들어있고, 우리밖에 있는 [다른양들]은 앞으로 땅에서 살 희망을 갖고있는 [큰무리]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우리/fold)의 내부엔 [하늘희망]을 갖는자들이 들어있고, [우리/fold]의 [외부]에는 땅에 살 전망을 갖는 [큰무리]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리되면, (fold/우리)가 양들 스스로가 갖는 미래에 관한 희망이 울타리란 얘긴데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나올 지경이다.
게다가 [JWs교]의 통치체는 1931년~1935년까진 우리내부에 들어갈 [적은무리]만을 모으다가 이제 그 정해진 [144,000명]의 숫자가 채워졌으므로 [큰무리]가 모아지기 시작했다고 가르쳐왔다.
그러므로 [통치체]의 주장이 맞다면 요한10:16절의 [fold]는 1931년경이 될때까진 아얘 없었단 소리가 된다. 왜냐하면 1930년까지 하나님은 [적은무리]의 멤버만 모아들이고 계셨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메시아께서 말씀하신 [fold]는 이미 기원31년경에도 있었다! 게다가 아브라함 시절부터 쭈~욱 지속되온 아브라함과의 언약으로 인해 생겨난 거룩한 마련이다.
아브라함과의 그 약속 때문에 유대인들과의 [율법언약]이 체결된것이고 [죄사함]에 관한 [제사직 마련]이 율법언약 속에 포함되어 있었던것이다. 따라서 메시아께서 언급하신 (Fold)는 아브라함 시대때부터 존속해온 아브라함과의 언약으로 인해 발생한 [fold/우리]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야으슈아]께선 요한복음10장에서 이미 (fold)도 존재하고 우리안의 (sheep)도 존재하는 것으로 말씀하신것이다! 첨부한다.
요한복음 10:16 Korean Living Bible (KLB)
16 《또 내게는 우리 안에 들어 있지 않은 다른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을 데려와야 한다. 그 양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목자 아래서 한 무리가 될 것이다.》
아래성구를 보면 우리밖에 있는 양떼를 모으는때는 아직 [미래의 일]임을 시사한다.
REV역이다.
(요한10:16)And I have other sheep that are not of this fold. I must bring them also, and they will hear my voice. And there will be one flock with one shepherd.
만일 [JWS교]의 해석이 맞다면 메시아께서는 요한10:16절을 [성취]시키시려고 [1931년]까지 기달렸단 얘기가 된다. 그때(1931년)부터 [큰무리]를 모으기 시작했으므로 적어도 기원33년부터 계산해봐도 (1897년) 이상을 기달리셨단 말이 된다. 독자가 JW인가? 독자가 볼때 (Watchtower Society)의 설명이 이치적으로 들리는가?
독자도 아다시피 메시아께선 손수 직접 요한10:16절을 성취시키려고 다시말해 이방사람들을 개종시켜서 원래의 [올리브나무]에 접붙이시려고 사울(사도바울)을 직접 일으키셨다! 사울(사도바울)은 야후슈아께서 직접 일으킨 이방인을 위한 사도였다.
따라서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이스라엘]로 접붙이기 위해 사도바울을 활용하셨음을 알 수 있다. 메시아께선 하늘에 계시지만 땅에있는 당신의 제자들을 활용해서 이방인들에게도 포괄적인 [복음전파]가 이뤄지도록 상황을 [조종]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점 때문에 우린 요한10:16절의 메시아의 예언이 사도들이 이땅에서 모두 사라지기전에 성취되도록 예정돼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것만봐도 1931년부터 (우리/fold)밖의 양들을 주님이 모아들이기 시작했다는개념이 얼마나 어이없는 개념인지 알 수 있다. 주님은 기원36년경부터 우리밖의 [다른양]들을 모아들이기 시작하셨다. 그래서 직접 바울 앞에 나타나신것이었다.
하늘에 올라가신 메시아께선 기원36년 가을부터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을 모으기 시작하셨다. 그 첫작품이 고넬료와 친구들이었다.
따라서 우린 기원36년 가을경부터 요한10:16절이 성취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Yochanan 10:16 Orthodox Jewish Bible (OJB)
16 And another tzon I have which is not of this mikhla (fold [enclosure]); those also it is necessary for me to bring, and my voice they will hear, and they will become eder echad with Ro’eh echad (One flock with one Shepherd). [YESHAYAH 56:8; YECHEZKEL 34:23; 37:24]
요한10:16절의 우리밖에 있는 [다른양]이 무엇인지 알려면 반드시 [우리/fold]가 무엇인지 알지 않으면 안된다.
요한10:16
16And I have other sheep which are not of this fold. It behooves Me to bring those also, and they will hear My voice, and there will be one flock with one shepherd.
여기말한 [fold]는 메시아께서 우리에 관한 설명을 하실때 이미 존재하고 있던 [fold]이다! 그점을 어찌알 수 있을까? 요한복음 9장과 10장 전체를 읽어보면 알게 된다. 메시아께서 요한10장에서 언급하신 (우리/fold)는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체결하신 언약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이방나라들과의 구분이 되는 [마련]이다. 이방나라는 하나님과의 언약관계 안에 없었다.
이 마련속엔 아브라함의 육적 후손들 즉 유대인들이 있었다. 따라서 메시아께서 이 우리안에 들어있지 않은 [다른양]이라고 말씀하셨을때 메시아께선 아브라함의 육적후손이 아닌 [이방인]가운데서 앞으로 당신의 제자가 될자들을 염두에 두면서 말씀하신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우리/fold)를 없애버린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심으로써 더이상 이방인들을 부정한 짐승처럼 보시지 않을것임을 명확하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이때는 기원33년니산월14일로부터 이미 [42개월]가량 지난[싯점]이므로 메시아에 의한 [대속희생]으로인해 자격을 갖춘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포함시키려는 [지정된때]가 도래했음을 의미했다.
고넬료와 친구들이 [아브라함의 씨]로 받아들여진다는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암튼간에 요한10:16절의 [다른양]이 앞으로 땅에서 살게 될 [큰무리]라고 가르치는것은 [코믹] 그 자체다.
그러므로 요한복음10:16절에 나온 [다른양]과 우리안의 양들은 모두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구성한다. 이들 모두는 창세기 22:17~18절에 묘사된 [아브라함의 씨]가 된다. 그래서 이들에겐 [이스라엘]이란 명칭이 주어진다. 바꿔말해 초기멤버엔 육적인 유대인들만 포함되다가 기원36년 가을 이후부턴 이방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될 [기회의 문]이 활짝 열린셈이다.
이들 메시아의 제자들 모두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다. 따라서 [큰무리]란 표현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란 용어보다 그의미가 숫자에 있어 적다는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큰환난에서 나오는~]이란 형용사가 따라 붙어 있으므로 [주의날]을 정점으로하는 [마지막날]에 메시아의 제자가 된자들로서 [큰환난]에서 [나오는자들]만을 의미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자가 아다시피 기원36년부터 [큰환난]이 발발하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하고 그 기간동안에도 상당히 많은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피에 겉옷을 빠는자들이 생길터이므로 그들도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포함될것이라고 봐야 한다.
성서는 하나님의 이스라엘 숫자를 말하지 않는다. 긍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왕국의 영역전체가 [야곱의12지파] 곧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될것이다. 이용어는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해 준 말속에 들어있다. 그러므로 결국 메시아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될것이다.
우린 몇명이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포함될지를 전혀 모른다. 그러나 한가지는 확실하다. 어린양의 [신부]보다는 많고 [큰환난]에서 나오는 [큰무리]보다도 많을거란 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스라엘 ]전체가 어린양의 [결혼식]에 초대받는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속하는 모든자를 하늘로 올리셔야 한다. 물론 필자는 그렇게 되길 바라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수 도 있다. 게다가 어린양의 결혼식과 피로연이 끝나고 피로연에 초대받았던 자들이 하늘에 남겨지는지 아니면 땅으로 다시 내려오는것인지 성경은 명확하게 그점을 설명하지 않는다.
사실 어린양의 신부도 왕겸 제사장으로 활동하는 장소가 하늘인지 혹은 땅위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필자는 지극히 주관적으로 [하늘영역]일거라고 본다. 왜냐하면 계시록은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성전의 여러요소가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시록5:9절에 보면 땅위에서 통치한다는 표현도 있다. 따라서 속단할 수 없다. 아뭏튼 성경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사실적 설명을 하지않는다. 계시록의 대부분은 비유적이고 상징적인 용어로 기록돼있다. 때가되면 하나님의 거룩한자들이 나타나서 알려줄것이므로 조급해 할 이유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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